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외왕내제 (문단 편집) === 한자문화권 === 5호16국 시대 [[천왕]]이라는 칭호가 애용되었으나 이건 외왕내제라 보기 어렵다. 굳이 남에게 숙이기 위해 황제 칭호 대신 천왕 칭호를 쓴 건 아니었기 때문.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천왕, 앵커=오호십육국·남북조 시대 유목 민족 왕조 군주의 칭호)] 일반적인 외왕내제와는 차이가 있으나, [[송나라|송나라(조송)]]는 국력의 약세로 인하여 현실적으로 자국의 황제가 천하의 지존으로 군림할 수가 없었다. [[북송]] 황제는 [[전연의 맹]]에 따라 [[요나라]] 황제와 의형제 관계를 맺었다. [[남송]] 때는 상황이 더 심각해져 [[소흥화의]](紹興和議]])에 따라 남송 황제가 [[금나라]] 황제에게 표문(表文)[* 제후 등 신하가 천자에게 올리는 글.]을 올리고 칭신(稱臣)[* 스스로를 신하라고 칭함.]하게 되었고 금나라 황제는 남송 황제를 '''책봉'''해주게 된다. 즉 금나라는 황제가 '''제후황제'''를 책봉하는 전무후무한 관행을 만들어낸 것이다. 또한 이것은 [[전한]]이 [[흉노]]에게 동생의 예를 맺은 이후 두번째로 중원의 통일왕조가 이민족 국가의 군주보다 아래의 관계가 된 사건이었다. 이런 대우는 금나라 기준으로 금세종, 송나라 기준으로는 송효종때 개선되는데 해릉왕의 폭정으로 금나라 사정이 급박해지자 송나라와 타협하여 군신관계를 숙질관계로 바꾸고, 세공이라는 명칭을 세폐로 바꾸며, 바치는 양도 줄였다. [[춘추시대]]에는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 [[오(춘추시대)|오나라]], [[월나라]]가 자국에서는 왕호를 칭하면서 중원에서는 자, 백으로 지칭되기도 했다.[* 당시 황제라는 말이 없었고 왕은 주나라 천자에게만 허락된 호칭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