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나라 (문단 편집) ==== 대외 무역 및 속국과의 조공 무역 ==== 요는 개방적인 국가라서 대외 관계가 넓었고 초기부터 오대의 국가들과 교역했다. 후진과는 매년 30만 필의 세공을 받으면서 국경 지역에서 교역을 진행했으며 매년 무역 규모가 커져서 상당한 숫자의 거란인들이 국경 지역으로 가서 장사를 했다. 심지어는 거란 상인들이 후진을 통과해 남당까지 가서 교역을 하기도 했다.[* 남당과의 교역 사례로는 요 태종 때 사신을 남당에 파견해 선물을 주고 3만 마리의 양과 300필의 말을 팔아 비단과 약, 차를 구매한 일이 있다.] 송이 건국된 이후에도 요는 국경 무역을 이어나갔으나, 양국간의 관계가 자주 나빠지고 군사적 충돌이 빈번해 무역이 단절되는 일이 잦았다. 다행히 전연의 맹을 체결함으로서 양국의 국경 무역이 부활하고 그 규모가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요 · 송 양국은 국경 일대에 각장과 관청을 설치해서 호시의 물가를 안정시키고 국경 무역을 통제했다.[* 송은 요와의 국경 무역에서 거래하는 상품의 가치를 시세보다 조금 더 후하게 쳐주었다.] 요는 은화와 직물 · 양 · 말 · 낙타 · 모피를 가져와서 송의 유황 · 염초 · 명반 · 차 · 비단 · 물소뿔 · 상아 · 향료 · 비단 · 칠기 · 약재 등과 교환했다. 요가 소비재와 기호품, 사치품을 수입했기 때문에 송은 전연의 맹을 맺던 경덕 연간부터 요와의 무역을 통해 매년 40만 냥의 수입을 취했다. 양국은 수출 · 입 금지 품목을 정해서 송은 동 · 철 · 유황 · 염초 · 명반 · 차 수출을 금하고 [* 개인이 사적으로 만든 사차(私茶)와 사적으로 유황, 염초, 명반을 판매하는 것을 통제했다. 국가가 관리하는 차와 유황, 염초, 명반은 허용했다.] 국가 기밀이 빠져나가는 것을 우려해서 일부 서적의 수출도 금하는 한편, 전매를 하는 소금의 수출도 엄금했다. 또한 송은 지나친 동전 유출을 우려해서 동전 수출을 통제하기도 했다. 반대로 요는 송의 군사력 강화를 경계해 비정기적으로 군마의 수출을 통제하고 서하와 여진을 협박해 그들이 송에 군마를 수출하지 못하게 막았다. 또한 송과 마찬가지로 국가 기밀 유출을 우려해 서적의 수출도 제한했다. 이러한 통제는 요와 서하의 강력한 기병대에 맞설 기병 전력이 부족한 송에게 무척이나 곤란한 일이었다. 그래서 송은 군마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서하와 여진에 비단을 주고 우수한 군마를 수입했다. 송은 최하품 군마에도 수십 필의 비단을 지불하는 금전적 보상을 통해 서하와 여진이 요의 보복이라는 위험 부담을 감수하게 만들었다. 이후, 서하와 여진이 자신의 명을 거부하고 송에 군마를 매각했다는 사실을 알아챈 요는 격노하여 서하와 여진에 사자를 보내어 이를 추궁하고 재차 압박을 가했다. 그러나, 서하와 여진은 일시적으로나 군마 매각을 중지할 뿐,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군마를 판매해 요와 갈등을 빚었다. 이렇듯 송 · 요 양국은 매우 강력한 통제 정책을 펼쳤지만, 완전한 무역 통제에는 실패하여 민간 무역의 성행을 막지 못했다. 요에서 유입된 밀매염이 송의 소금 전매 제도에 큰 타격을 주고, 송이 여진과의 밀무역으로 군마를 조달해 요가 이를 간 적도 있다. 그리고 요나라 사람들이 워낙 송의 시와 문학을 좋아하다보니 금령에도 불구하고 송의 서적과 문인들의 시집이 지속적으로 유출되었고, 요의 사신이 송 조정에 대놓고 위야(魏野)의 시를 요청해서 진종이 시집을 하사한 일도 있었다.[* 그것도 위야가 이미 죽어서 시집을 찾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수소문해서 구해줬다.] 요는 송과의 무역 이외에도 비단길 중 하나인 초원길을 장악하고 진무군(내몽골 화림격이 지역)과 영강주, 동 · 서부 국경 지역에 호시를 열어 고려, 서하, [[하서회골|천산 위구르]], [[고창회골|고창]], [[쿠차|구자]], [[호탄|우전]], 여진, 조복 등과 교역했다. 이들 주변국과의 경제 교류는 대부분 조공과 국경 무역인 호시를 통해 이루어졌다. 서하와의 대외 무역은 양국 간의 우호적인 관계에 기반한 조공 무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요 · 서하 양국은 자주 사신을 파견하여 교류했는데, 서하의 사신단은 조공 무역과는 별도로 요의 도시를 지날 때마다 그곳의 상인들과 사무역을 했다. 서하의 조공품은 말 · 낙타 · 비단 · 소금 · 보석 · 가죽 등이며 요는 하사품으로 직물 · 말 · 활 · 포도주 · 과일 · 비단 등을 주었다. 고려와와는 보주(지금의 의주)를 고정적인 무역 시장으로 삼아 상거래를 벌였다. 고려는 요에 여러 가지 금은 세공품 · 직물 · 구리 · 인삼 등을 조공품으로 바치고 요는 답례로 각종 장식품 · 말 · 양 · 활 · 비단 등을 주었다. 요는 또한 이슬람 제국과 페르시아의 여러 국가와 일본, 그밖의 나라들과도 교류했다. 고창, 구자, 우전과 같은 실크로드 국가들은 3년마다 400명 정도의 규모로 사신단을 파견했는데, 요 조정은 사신단이 가져온 옥 · 유향 · 호박 · 강철 · 마노 · 보석 등의 조공품을 받고 그에 대한 답례로 최소 40만 관 이상을 지불했다. 실크로드 국가들과의 공무역 규모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중에서도 천산 위구르와의 교역이 가장 많았는데, 상업 항모에 서술했듯이 수도 상경에 회골영이라 부르는 위구르 상인들만을 위한 거주 지구가 존재할 정도였다. 일본의 경우에는 후지와라노 무네타다가 저술한 중우기(中右記)에 요에 몰래 무기를 판매하고 재화를 받아온 이들이 적발당한 일이 기록되어 있으며 후지와라노 코레후사가 금지된 사무역을 벌이다 발각당해 처벌당한 일도 있어 요 - 일본 간의 사무역은 강하게 통제된 상태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외교적 선물도 상호 교류의 수단이었다. 고려는 종이 · 묵 · 쌀 · 동 · 인삼 · 직물 등을, 서하와 천산 위구르는 진주 · 옥 · 물소뿔 · 유향 · 호박 · 철기 · 말 · 낙타 · 모직물 등을 선물했으며 요는 안장 · 말 · 활 · 화살 · 모피 · 견직물 등을 답례로 주었다. 그리고 요는 자국에서 생산한 재화를 주변국과 교역했을 뿐 아니라 국경 무역을 통해 얻은 상품을 다른 지역에 되팔아 중간 이익을 얻기도 했다. 여진에게서 진주를 구해 송 황실에 매각하거나, 천산 위구르에게서 야생마 가죽과 호피를 구매해 송에게 되파는 등,[* 야생마 가죽과 호피는 요에서도 진귀하게 여기는 것으로, 다른 가죽을 염색해 호피로 사칭을 하는 일도 있었다.] 요는 주변국과의 조공, 사여, 선물, 국경 무역을 통해 여러 가지 재화를 직, 간접적으로 교역했다. 속국, 속부와의 무역과 상거래도 많았다. 숙여진은 금과 비단 · 직물 · 밀랍 · 잣 · 꿀, 백부자와 천삼성, 인삼과 같은 약재를, 동북의 생여진과 철리(鐵離), 말갈(靺鞨), 우궐(于厥) 등은 담수 진주 · 날다람쥐 · 담비 가죽과 상어 껍질 · 소와 말 · 낙타 · 모직물을, 조복과 오고, 적렬 같은 몽골 유목민들은 소와 말, 낙타, 각종 가죽 등의 특산물을 조공품으로 바치고 답례물을 받았으며 조공품 외에 가져온 재화들을 시장에서 거래했다. 《요사》 「식화지」에 이들 삼림, 유목 민족들 중에 요와 교역을 하려는 자들이 도로에 끊이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어 이들과의 무역이 상당한 규모였던 것으로 보인다. 요 조정은 송과의 무역과 마찬가지로 외국과 속국, 속부와의 무역과 상거래를 할 때에 금지 품목을 정했다. 서하와의 무역에서는 금과 철의 유출을 금하고 천산 위구르와 조복과의 무역에서도 철의 판매를 막았다. 아무래도 철이 갑옷과 무기, 화살촉을 만들 수 있는 자원이기 때문에 통제한 것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