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아스(유다) (문단 편집) == 생애 == [[아달리야]](아달야)의 왕족 대학살에서 공주 여호세바가 숨겨주면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뒤,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보호를 받다가 6살 때 여호야다가 아달랴를 폐위시키며 왕위를 되찾았다.[* 다만 요아스는 다름아닌 아달리야의 친손자기 때문에 과연 아달리야가 정말로 요아스까지 죽이려 했는지는 후대 학자들에게 상당 부분 의문시되고 있다. 요아스를 빼돌린 건 아달리야 사후를 기약하려는 여호야다의 어떤 계획이었을 개연성도 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 왕국|북이스라엘]]에서는 완전히 혈통이 끊겨버린 [[오므리]]-[[아합]] 왕가 및 [[이세벨]]의 혈통은 이 요아스를 통해 이어지게 된다.] 즉위할 때 나이는 7세였기 때문에 여호야다가 섭정을 맡았으며, 즉위 23년째에는 헌금을 모아 아달랴 때 훼손된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했다.[* 열왕기와 역대기 모두 헌금을 모았으나 사제들이 태업하여 요아스가 개입하고 나서야 수리가 진행되었다고 전한다.] 요아스는 여호야다가 살아있을 때는 하느님을 잘 섬겼지만, 여호야다 사후에는 대신들의 영향을 받아 우상 숭배로 기울었다. 역대하에서는 아람의 침공 직전에 여호야다의 아들인 즈카르야[* 개역개정판은 스가랴, 공동번역은 즈가리야, 가톨릭에선 즈카르야로 번역. 가톨릭판 표기가 보다 원음에 가깝다.]가 요아스의 우상숭배를 비판하자 요아스가 스가랴를 처형하여 은혜를 웬수로 갚는데, 즈카르야는 처형 직전에 하느님에게 자신의 죽음을 보시고 갚아 달라는 기도를 올렸다. 이후 아람의 침략을 받자 요아스는 군사를 이끌고 막으러 갔으나, 대패하고 전투에서 심한 상처를 입었다. 이때 예루살렘이 약탈당한 뒤[* [[열왕기]] 하권에서는 아람군이 유다를 노리고 방향을 틀자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바친 것으로 나온다.] 반란군에게 살해당했다. 사후 다윗 성에 묻혔고,[* 열왕기 하권과 역대기 하권의 기록이 다르다. 열왕기에는 다윗 성에 묻혔다고만 적혔고, 역대기에는 다윗 성에 묻혔으나 왕실 묘역에 묻히진 않았다고 한다.] 그의 아들 [[아마지야|아마샤]](아마츠야)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들 아마샤 역시 반역자들에게 살해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