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압 (문단 편집) == 세바의 반란 == 압살롬의 반란은 진압되었지만 이미 한 번 들고 일어난 반 다윗 세력은 이미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드러나 있었던데다, 마하나임에서 예루살렘으로 복귀하던 다윗을 유다 지파만이 맞이하게 되면서 타 이스라엘인들의 분개를 사는 사건까지 터진다. 여기에 대해 유다 지파에선 '''왜 이러신가? 우리가 그렇다고 뭐 특혜받은 거 없거든요?'''라고 변명하지만, '''너네랑 다윗이 짜고 치면서 우릴 왕따하고 있잖아!'''라고 이스라엘인들의 빈축만 샀다. 아닌 게 아니라 '''다윗에게 반기를 든 세력 중 가장 크게 가담한 쪽이 바로 유다 지파이기 때문이다.''' 유다 외의 타 지파들은 그래도 왕이라고 다윗을 잘 모시고 있다가 어느 때 환궁시킬까 고심하던 차에 유다 측에서 선수를 치고 생색을 내니 열이 받을 수 밖에. 이렇게 이들은 비그리의 아들 세바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봉기한다.[* 왕권 탈취가 목적이었던 압살롬의 반란과는 달리 세바의 반란은 반 다윗, 나아가 반 유다 지파라는 슬로건을 지닌 일종의 민란에 가까웠다.] 다윗은 아마사로 하여금 삼 일 내로 유다 지파 내에서 군대를 소집할 것을 명령했지만 요압과는 달리 유다 지파 내에서 변변치 않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던 아마사는 기한 내에 군대를 소집하지 못했다. 압살롬과 다윗 간의 싸움에서 다윗에게 크게 발린 쪽이 당시 총지휘관이었던 아마사였는데, 미쳤다고 아마사 밑에 또 들어갈 군사는 없었을 것이다. 이래저래 총체적 난국. 결국 다윗은 요압과는 달리 적어도 자신의 말에는 절대 충성하는 충직한 용사 아비새를 불러 세바 토벌령을 하달한다. 아마사와는 달리 아비새는 다윗 자신과 오랫동안 전장을 함께한 장수였기에 능력은 확실히 검증된데다, 자신을 향하는 충성심 역시 요압과는 수준이 다르니 나름대로 다윗으로서는 훌륭한 대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명을 하달받은 아비새는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토벌군을 구성하는데 여기서 아비새는 다윗이 상상도 못한 방법으로 그의 뒤통수를 후려갈겨버렸다. 바로 세바 토벌군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다윗에게 찍혀서 쫓겨난 자신의 형 요압을 자기 손으로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그 역시 다윗의 측근으로서 늘 다윗의 곁에 있었기에 형인 요압과 자신이 충성을 바치는 다윗이 서로 사이가 안 좋다는 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비새가 왜 요압을 불러들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어느 정도 유추를 해보자면 그저 단순히 자신보다 형 요압이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적임자라고 판단했거나, 형 요압의 자리를 가로챈 신임 군대사령관인 아마사를 용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브넬 암살 건에서 보다시피 비록 아비새가 다윗에게 충성하는 용사였지만, 맹목적일 정도로 형 요압의 뜻을 따랐다. 후에 다윗이 아비새를 처벌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아비새가 요압을 부른 건은 넘어가준 모양. 그리고 아비새가 요압을 다시 데려온 또 다른 가능성은, 새로 임명된 군사령관인 아마사의 인망과 영향력이 아무래도 이스라엘 군 내에서 시원찮은 편이다 보니 그것을 못 미더워하여 경록도 인망도 있는 요압만이 군사령관으로서 적임자라는 판단 하에 이를 독단적으로 진행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그래도 수많은 전투에서 많은 공을 혁혁하게 세우며 다윗 왕국의 건립이 앞장선 요압이니만큼 그 위상은 이스라엘 군 내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지닌 것은 기정사실이니 말이다. 눈치 빠른 요압이 아비새를 대신해서 지휘권을 잡자, 기존에 있던 요압의 부하들은 물론 유다 지파의 남자들이 속속 요압과 아비새의 군대에 합류하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세바 토벌군이 구성되었다. 아마사와 달리 요압은 이스라엘에 널리 알려진 불세출의 명장이었으니 군사 사기 역시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구성된 군대를 이끌고 기브온 큰 바위까지 진군했을 때, 마침 아마사가 부하들을 이끌고 이를 맞이하러 나와 있었다. 요압은 사촌 형인 아마사에게 "장군, 평안하시오?"라며 인사하는 척 가까이 갔고 아마사 역시 의심하지 않고 요압에게 가까이 갔다가 그만 요압의 손에 들린 칼을 주의하지 못한 방심을 저질렀고...[* 이것도 요압의 계산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아마사에게 인사하는 척 다가가면서 일부러 칼집에서 칼이 스스륵 빠지게 만들고 실수인 척 빠진 칼을 주웠다. 이런 꾀로 한 손에 칼을 무장한 상태로 아마사와 근접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요압의 칼에 배를 찔려 죽고 만다.''' 얼마나 깊숙히 찔렸는지 창자가 땅에 쏟아져 다시 치지 않아도 죽었다고 할 정도였다.[* 아브넬 살해 사건 이후 두 번째 비무장 동료 군인 살해 사건이다. 아브넬 때야 제 동생을 죽인 살육자에 대한 타당한 보복이라며 어찌저찌 쉴드친다해도(율법에서는 혈육을 죽인 살인자에 대해선 가족이 복수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율법상으로도 100% 살인혐의로 사형을 받아도 변호 불가다.] 거기다 아마사를 살해한 직후 요압의 시동이 아마사의 시체 옆에서 '요압을 좋아하는 자와 다윗을 위하는 자는 요압의 뒤를 따르라'라고 하자 아마사의 얼마 안되는 병사들마저 죄다 요압에게 붙어버린 것도 모자라 인근 지역의 장정들까지 요압의 군대에 합류하면서 요압의 군대는 점점 더 불어나게 된다. 한편 요압이 군을 이끌고 자신을 잡으러 온다는 소식을 듣자 기절초풍한 세바는 급하게나마 아벨 벳 마아카란 성에 들어가 대항해보지만... 요압은 공성전을 벌일 필요도 없다는 듯 시크하게 군대를 동원해 공격축대를 쌓아 바깥성벽만큼 올리고 '''성을 통째로 헐어버리려고 했다.''' 그러자 아벨 성 안에 있던 어떤 한 여인이 요압더러 '님 왜 우릴 다 죽이려고 하나요. 여긴 속담에도 나오는 현인들의 성읍인데요'라고 따지자 이에 요압의 '세바만 죽으면 그럴 일이 없다'란 말 한마디에 이 여인은 성 안의 사람들과 공모하여 냅다 세바 목을 잘라다 성 밖으로 던져버리고 항복해버림으로써 세바의 반란은 순식간에 진압되었다. 이 사건으로 요압은 다시 한 번 자신이 이스라엘 군부의 수장이자 유다 지파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증명해보였으며, 가히 명실상부한 이스라엘의 2인자라는 것을 온 이스라엘과 '''다윗'''에게 각인시켰다. 이로 인해 아마사로 하여금 요압을 견제하고자 하였던 다윗의 노력 역시 물거품으로 돌아가버렸고, 그가 죽을 때까지 다윗은 요압을 제거하지 못했다. 사실상 이 당시의 요압은 막강한 군부의 지지와 다윗의 정치적 기반이나 다름없는 유다 지파의 영향력까지 모두 손에 넣은 '''이스라엘 최고의 [[권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