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크 (문단 편집) === 역사 === 로마인들이 원주민, 즉 [[켈트족]]을 밀어내고 요새화시킨 도시 중 하나로, 당시의 이름은 에보라쿰이었다.[* 요크민스터 지하에 로마 시대 군단기지 유적이 발견됐다. 요크민스터에 가면 지하 박물관에 잘 꾸며놨으니 관람해보기를 권한다. 여하간 그런 연유로 요크는 도시의 시조로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들고 있다. 그 군단기지 주둔하던 군단의 군단장이 바로 콘스탄티누스였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가지는 도시였고, 이후 로마인들이 브리튼 섬에서 나간 후 [[브리튼인]]이 살다가 이후 [[앵글로색슨]]인의 국가인 [[노섬브리아]]의 영토가 되었다. 당시의 이름은 에포위치. 그러다 [[이교도 대군세]] 때 [[덴마크인]], 즉 [[바이킹]]의 대대적인 습격을 받아 점령당한다. 이때의 이름은 요르빅으로 요크라는 이름의 어원이 되었다. 이후 앵글로색슨의 7왕국 중 하나인 노섬브리아 왕국의 수도로써 기능하기 시작하며, 7왕국이 웨색스 왕국 아래 통일된 이래 잉글랜드 왕국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계속 남는다. 이후 요크셔 지방을 [[에드워드 3세]]의 아들인 랭글리의 에드먼드가 분봉받으며 초대 요크 공작이 되었고, 이 핏줄에서 15세기에만 잉글랜드의 왕을 세 명 배출하며 요크家는 요크 왕가가 되었다. 이 시기에도 요크는 요크셔 지방의 수도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이후 영국내전 당시 왕당파 도시로 버티다가 의회군 사령관이던 토머스 페어팩스 경에 의해서 점령당하기도 했다. 드넓은 요크셔 지방에서는 풍부한 양모가 생산되었고 석탄 채굴도 시작됨에 따라 산업혁명 시기에도 계속해서 성장했다. 인구와 산업이 도시로 집중되면서 요크는 영국 제2도시로 성장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