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흥 (문단 편집) === 대외팽창 === 부등을 죽인 요흥은 숙부 요서(姚緖)와 요석덕(姚碩德)의 의견을 따라 내치를 안정시키고, 선비 [[탁발부]]의 [[북위]](北魏) 및 선비 [[모용부]]의 [[후연]](後燕)과 화친하며 외치를 다졌다. 그리고나서 본격적으로 정복전쟁을 시작했는데 396년에는 전진 세력의 근거지였던 상규(上邽)를 점령했으며, 397년에는 한족의 [[동진]](東晉)이 차지하고 있었던 호성(湖城)을 점령했고, 399년에는 고도 낙양(洛陽)을 점령해 [[한수]](漢水)와 [[회하]](淮河) 이북 지역을 석권했다. 400년에는 농서를 공격하여 선비 [[걸복부]]의 [[서진(오호십육국시대)|서진]](西秦)을 멸망시켰으며 401년에는 저족 여씨의 [[후량(오호십육국시대)|후량]](後涼)을 공격하여 복속시켰다. 하지만, 북위와 외교마찰이 생기면서 공격받았으며 그 결과 402년에 북위를 공격했으나, 시벽(柴壁)에서 패배했다. 403년에는 다시 후량을 공격하여 멸망시켰으며 한족 이씨의 [[서량#s-1|서량]](西凉), [[노수호]]족 저거씨의 [[북량]](北凉), 선비 [[독발부]]의 [[남량]](南凉)을 모두 속국으로 만들었다. 405년에는 저족이 세운 [[구지|후구지]](後仇池)도 복속시켰고, 407년에는 북위와 화의를 맺었다. 또한 [[남연]](南燕)의 황제 [[모용초]](慕容超)의 모친 단씨와 부인 호연씨를 송환하는 조건으로 남연도 속국으로 만들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