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흥 (문단 편집) === 후계자 문제와 붕어 === 414년, 요흥이 병으로 쇠약해지자 그의 아들들이 제위 계승을 둘러싸고 대립했다. 요흥은 태자인 [[요홍]](姚泓) 대신, 요필(姚弼)을 총애했는데, 요필은 부황 요흥의 병세가 심해지자 장안에서 정변을 일으키려 했고, 다른 형제들이 이에 맞섰다. 문제는 병에서 호전된 요흥이 요필을 죽이지 않고, 직위를 빼앗는 것으로 처벌을 대신했다는 점이다. 기세등등해진 요필은 415년에 다시 정변을 일으켰다가 용서받았고, 416년에는 요흥이 순시를 간 틈을 타 세 번째 정변을 일으켰는데, 이번엔 요흥도 요필을 용서하지 않고, 병든 몸을 이끌고 나서서 손수 반란을 진압한 후 요필을 처형했다. 요흥은 반란을 진압한 다음날 51세의 나이로 붕어했으며, 우릉(偶陵)에 매장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