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욥기 (문단 편집) == 내용 == 어느 날, 사탄이 하느님에게 내기를 걸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상에 '욥'이라는 하느님을 향한 믿음이 깊은 사람이 있는데, 욥에게 재앙을 가져다주면 하느님을 욕할 것인지 아닌지 내기하게 되었다. 우선 사탄이 "이제 손을 들어 그의 모든 소유를 쳐보십시오. 그는 반드시 당신께 면전에서 욕을 할 것입니다."[* 사탄이 말을 걸 당시 욥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부유한 사람이었고 사탄은 그가 하느님을 잘 섬기는 이유는 하느님이 그에게 이런 부유한 인생을 허락했기 때문이라고 했다.]라고 부추기고, 하느님은 "좋다! 이제 내가 그의 소유를 모두 네 손에 붙인다. 그러나 그의 몸에만은 손을 대지 마라." 라고 하며 허락하고, '''사탄은 욥에게 재앙을 가져다준다.'''[* 생명을 해치는 것은 창조 권세를 주관하는 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결과론적으로는 욥이 자신에게 수많은 시련이 닥쳤는데도 [[자살|그 목숨을 스스로 버리지]] 않았으므로 수많은 복을 받아 누렸다.] 사탄은 우선 사고와 전염병으로 욥의 재산을 모두 날려버린다. 그 다음에는 도적떼가 몰려들게 하여 [[낙타]][* 이 당시 낙타는 예전 우리나라의 말이나 소 같은 개념이었다. 당시 고대인들에게 정말 중요하고 가치있던 재산인 것이다.]를 죽이고 집이 무너지게 하여 욥의 자식들까지 몰살시켰다. 욥의 가축들이 도살되고 머슴들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심부름꾼이 "저 혼자만 살아남아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라고 말한 이 구절은, 소설 [[모비 딕(소설)|모비 딕]]에서 피쿼드 호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사람이자 일인칭 관찰자 주인공인 [[이스마엘]]이 살아남은 이야기를 담은 마지막 장의 시작이다. 이럼에도 욥은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벌거벗고 세상에 태어난 몸, 알몸으로 돌아가리라. [[야훼]]께서 주셨던 것, 야훼께서 도로 가져가시니 다만 야훼의 이름을 찬양할지라. >---- >― 욥기 1장 21절([[공동번역성서]])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재산과 자식들 모두 하느님이 주신 것이니 이를 거두는 것 또한 하느님의 뜻이라고 여겼다. 사탄이 다시 하느님을 만났을 때 하느님은 "너는 내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만큼 온전하고 진실하며 나를 두려워하고 악한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 없다. 그는 여전하지 않느냐? 네가 나를 충동하여 그를 없애려고 했지만 다 헛일이었다."라고 하자 사탄은 "사람이란 제 목숨 하나 건지기 위해 내놓지 못할 것이 없는 법입니다. 이제 손을 들어 그의 뼈와 살을 쳐보십시오. 제가 보장합니다. 그는 반드시 당신께 면전에서 욕을 할 것입니다." 라고 하자 역시 하느님은 "좋다! 이제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인다. 그러나 그의 목숨만은 건드리지 마라." 한다. 이에 사탄은 마지막으로 욥을 피부병(부스럼)에 걸리게 했다. 재산과 자식들을 모두 잃은 것도 모자라 본인까지 병에 걸려 기왓장으로~~중동 문명에 기와가 있나?~~[* 원어는 히브리어 헤레쓰(חֶ֔רֶשׂ)로써 이전에는 '기와 조각'으로 번역되었다가 개역개정판에서는 질그릇 조각, 공동번역성서에서는 토기 조각으로 번역되었다. 영문 성경에서는 potsherd(질그릇 조각)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이 단어의 의미는 명확하게 해석되었다기보단 유추되어서 해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예레미야|예레미야서]] 19장에 '하시드 문'이라고 하는 기묘한 표현이 등장하는데 원어는 '솨아르 하르쑤트(שַׁ֣עַר חרסות)'에 가까우며 이 역시 토기 조각 + 문(門)이기 때문에 토기 조각으로 장식된 문이거나 혹은 인근에 토기에 관련된 어떤 요소가 존재했기 때문에 저런 이름이 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본문의 헤레쓰의 경우 '문지르다(긁다)', 혹은 '피부병'이라는 의미가 담긴 헤레쓰(חָ֑רֶס)라는 히브리어 단어와도 관련이 있다. 이 둘을 조합해보면 '몸을 긁는 용도의 토기 조각' 정도가 되는 것이다.] 몸을 긁는 불쌍한 신세가 된 욥[* 참고로 욥이 몸을 긁는 것은 가라드(גָּרֵ֖ד)라는 단어로 표기되는데 직역하면 '문질러 벗겨지게 하다' 라는 의미다. 즉 욥은 간지러움을 참지 못해 토기 조각으로 몸의 껍질이 벗겨져나갈 정도로 긁어대고 있었다는 것이다.]을 향해, 욥의 아내는 하느님을 저주하고 그냥 죽어 버리라고 악담한다.[* 정말로 이렇게 말했다. "그의 아내가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아직도 요지부동이군요? 하느님을 욕하고 죽으시오." - 욥기 2장 9절, [[공동번역성서]]][* 욥의 아내처럼 불경건한 말을 하지 말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욥의 아내의 처지가 되어 생각해보면 그렇게 욥의 아내를 함부로 신앙이 없다고 나쁜 여인이라고 정죄할 수 없다. 갑자기 자신이 낳은 자식들과 집의 재산들을 한꺼번에 잃고 남편마저 피부병에 걸려 고생하고 있는데 이유를 알 수 없는 감당하기 힘든 고난이 욥 뿐 아니라 욥의 아내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욥의 아내의 악담은 당연한 인간의 반응이다.] 그러나 욥은 태연자약하게 "바보같은 소리. 하느님께서 복을 주셨으니 재앙을 내리시는 것도 당연하지 않소?"라고 대답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Job_friends.jpg|width=250]] 병에 걸려 드러누운 욥에게 친구들인 데만 사람 엘리바스, 나아마 사람 소발, 수아 사람 빌닷이 찾아오는데, 처음에는 욥의 상황이 너무 참담해서... 말로는 위로도 못 하고 옷을 찢으며 울면서 그냥 1주일간(!) 밤낮을 말없이 있어주었다.[* 그래도 일주일간 울면서 같이 있던 것을 보면 좋은 친구는 맞긴 맞다. 다만 고난에 대해서 "죄=고난", "죄 없음=행복" 이라는 인과응보적인 이분법 사고를 가졌기에 언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욥이 왜 자기가 고난을 겪는지 이해를 못 하고 절규하자, "이렇게 화를 당하는 것을 보면, 네가 하느님께 죄를 지은 것이 틀림없으니 인정해!"라고 강요하지만, 욥은 "내 잘못이 이렇게 큰 재난당할 정도로 크지 않은데[* 욥기 7장 7~21절. 하지만 도입부의 서술과 자신의 증언으로는, 욥처럼 완전하고 진실되며 악행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은 지상에 다시 없다고 한다.] 내가 이토록 혹독한 재앙을 당함은 억울한 일이야!"라고 소리 높여 주장한다. 그 다음은 '''욥과 친구들의 언쟁'''으로 욥과 친구들의 언쟁이야말로 욥기의 본문으로, 욥기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담는다. 7일 후 욥은 마침내 입을 열고, "차라리 내가 태어난 날 재앙이 일어나 내가 죽었으면, 내가 죽어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이라며 자기가 태어난 것 자체를 저주하고, 그 말을 들은 엘리바스는 "너는 그동안 그토록 많은 사람을 고통에서 구해주더니 본인이 고통에 빠지니 그대로 절망하는 구나."라고 한탄하며, "네가 무슨 죄를 지어서 하느님이 벌을 내리시는 모양이다. 그러니 용서를 구해라. 설사 벌을 받는다 해도 벌이 끝나면 반드시 복을 주실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욥은 "나는 이런 끔찍한 벌을 받을 만큼 하느님께 잘못을 한 기억이 없다"라고 반박하고, 이어서 "하느님, 저는 언제 죽을지 알 수 없고, 오래 살지 못하는 인간입니다. 그러니 지금 말하겠습니다. 왜 저를 이 지경으로 만드셨습니까? 차라리 죽는게 낫겠습니다!"라며 항의 가까운 기도를 한다. 그러자 빌닷이 "불평만 하고 있을거냐? 하느님이 정의와 공의를 어기실 분이냐? 네 자식들이 죄를 지어 벌을 받는 것일지도 모르니 네가 회개를 해라. 그럼 넌 다시 복을 받고 행복해질 거다"라며 욥에게 반박한다. 그러나 욥은 "하느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 세상에 어딨냐? 그 분이 뭘 하시겠다 하면 막을 수 있는 자가 어딨어? 차라리 벌을 받아도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비는 게 낫지."하고 다시 "하느님! 당신은 사람의 시선으로 판단하는 분도 아니시고, 제가 악하지 않은 것도 아시면서 왜 이런 재앙을 내리십니까? 얼마 안 남은 인생 좀 편하게 보내게 해주시면 안 됩니까?"라고 다시 항의기도를 한다. 그러자 소발이 듣다가 마침내 꼭지가 돌았는지 "네가 지금 하느님 앞에 깨끗하다고 하는 거냐? 네가 하나님 생각을 무슨 수로 알아? 죄를 범했으면 버리고 마음을 바로잡아라. 그러면 네가 다시 일어나게 될 거다"라며 욥을 꾸중한다. 욥은 "이야,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네? 내가 바보냐? 나도 너희만큼 알아. 너희가 하느님의 대변자라도 되냐? 나는 그분이 날 죽인다 해도 내 행위에 대해 증언 정도는 할 수 있어."라고 대놓고 말하며, 또 "하느님, 저를 그냥 덮어놓고 원수 취급하면서 벌만 내리지 마시고 그냥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시원하게 알려주십시오. 아니면 저를 지옥에 보내셨다가 화가 풀리면 그 때 다시 데려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 엘리바스는 "네가 아주 하느님 섬기기를 때려쳤구나. 하느님이 너한테 하시는 말이 다 별것 아닌 말이냐? 하느님이 악인을 용납하고 의인을 버리는 분이시냐? 세상에 하느님 보시기에 깨끗한 사람이 어딨냐? 악인은 하느님께 대항하지만 오로지 망하기만 할 뿐이야"[* 사실상 욥이 망할 악인이라고 한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욥을 비난한다. 욥은 다시 "너희는 나한테 위로가 아니라 비난을 하러 온 거냐? 나도 너희들처럼 할 말 많고 똑같이 반론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래봤자 이 고통이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또 "하느님, 제 친구들까지 지금 저를 조롱하고 이 모양입니다. 하느님이 제가 무죄하다는 증인이 되어 중재해 주십시오"라고 아예 변호사 고용신청을 넣는다. 빌닷은 이젠 아주 할 말이 없다는 듯 욥에게 악인의 끝은 말할 수 없이 비참하고 참혹하다며 욥을 비난하고, 결국 이 설전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진다. 여기서 특징이 있는 부분은 '''욥의 친구 셋이 인과응보 논리'''에 의거해, 욥에게 죄악이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욥이 자신의 정당함을 논리로 삼아서 인간을 초월하는 하느님이 내린 고난을 한탄'''하고 하소연한다면, 친구들은 하느님이 너에게서 부정(否定)을 보았기 때문에 벌했을 것"이라는 논리로 욥을 공격한다. 이 상황만 보면 위로하러 온 게 아니라, 욥을 나쁜 놈으로 몰아가 회개하게 하려는 의도로 온 듯하다. 마지막에 갑툭튀한 엘리후는 인과응보적 논리에서 탈피함과 동시에, 욥의 태도가 하나님에 대해 불경스럽다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인다.[* 엘리후에 대한 평판은 논리적으로 옳다 vs 인정머리 없이 디스밖에 모른다는 논란이 오가고 있다. 일단 성경 자체에서 엘리후가 옳은 인물이었는지, 잘못된 인물이었는지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 다만 국내 개신교 쪽 성경이나 교리 책에선 엘리후에 대한 태도는 대체적으로 우호중립쪽이다.] 이에 욥은 하느님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자. '''정말로 하느님이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나타났다.]]''' 하느님은 욥의 고통에 대답하는 대신, '''당신의 초월적인 권능을 감히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답한다. 여기서 [[레비아탄]], [[베헤모스]] 이야기도 나온다. 이 부분의 묘사는 [[에제키엘]]과 [[요한의 복음서|요한복음]]의 초반부와 일치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으니 주의 깊게 살펴보길 권한다. 서로 시대 상황에 따라 묘하게 바뀐 내용일 뿐 근본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동일하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그렇게 세상물정을 잘 알거든 말해 보아라. 누가 이 땅을 설계했느냐? 그 누가 줄을 치고 금을 그었느냐? 어디에 땅을 받치는 기둥이 박혀 있느냐? 그 누가 세상의 주춧돌을 놓았느냐? (중략) >바다가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 그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 바다를 구름으로 싸고 먹구름으로 묶어둔 것은 바로 나였다. 바다가 넘지 못하도록 금 그어놓고 문에 빗장을 내려놓은 것은 바로 나였다. (중략) >네가 언제고 동이 틀 것을 명령해 본 일이 있느냐? 새벽의 여신에게 "이것이 네 자리다." 하고 일러준 일이 있느냐? 땅의 옷깃을 휘어잡고 불의한 사람들을 그 속에서 털어내라고 명령을 내려본 일이 있느냐? (중략) >네가 천상의 운행 법칙을 결정하고 지상의 자연 법칙을 만들었느냐? 너는 구름에 호령하여 물을 동이로 쏟아 땅을 뒤덮게 할 수 있느냐? 네가 "나가라."라고 명령하면 "알았습니다." 하며 번갯불이 번쩍 퉁겨 나가느냐?(중략) >---- >― 욥기 38장([[공동번역성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욥은, 하느님의 권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순응했다. >욥이 [[야훼]]께 대답하였다.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으십니다. 계획하신 일은 무엇이든지 이루십니다. 부질없는 말로 당신의 뜻을 가린 자, 그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이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한 일들을 영문도 모르면서 지껄였습니다. 당신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물을 터이니 알거든 대답하여라." 당신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소문으로 겨우 들었었는데, 이제 저는 이 눈으로 당신을 뵈었습니다. 그리하여 제 말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티끌과 잿더미에 앉아 뉘우칩니다. >---- >― 욥기 42장 1~6절([[공동번역성서]]) 결국 '''[[해피엔딩|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은 욥은 하느님에게 이전보다 크게 은총을 받아]]''', 전보다 [[경사났네 경사났어|많은 재산]]과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많은 자손]]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서 욥의 모든 재산이 2배로 늘어났다. 내기 이전 양 7,000마리, 낙타 3,000마리, 소 500마리, 암나귀 500마리였던 재산이 양 14,000마리, 낙타 6,000마리, 소 1,000마리, 암나귀 1,000마리로 늘어났고 욥이 그 이후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아[* 이 세 딸은 전부 그 지방에서 제일가는 미녀로 성장했다고.] 4대까지 140년 동안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욥이 고난을 받았을 때의 나이가 70살(140년의 절반)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죽은 자식들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해피엔딩인지 의문이지만~~[* 자식들에 대한 해석은 하단 참조.] 사실 하느님의 편을 들었다고 할 만한 욥의 세 친구들이 하느님에게 "너희의 말한 것은 내 종 욥의 말같이 알맞지(right) 않았다." 라며 단죄받지만, 욥이 그들을 배려해 빌어준다면 용서해 주겠다고 한다. 욥기 글쓴이가 무슨 생각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 욥기의 주제가 단순히 '''[[기복신앙|신앙을 계속 유지하면 복 받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하느님에게 알맞지 않다고 직접 지적받은 욥의 세 친구들 측의 의견이 '신앙을 계속 유지하면 복 받는다.' 쪽이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피해자나 낙태아를 위시해 현실에서 실패하거나 미온한 채 사망한 사람이나 별다른 잘못도 없었는데 고통받고 보상받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실재하는 상황에서 믿으면 복받는다는 논리가 알맞을 리가 없으니,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결론이다. 욥의 세 친구들은 '[[악의 문제|하느님이 있다면 왜 선한 사람이 고통받는가?]]'라는 질문에 똑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고통받는 놈이 악한 놈(첫째 친구 엘리바즈)이라든지 고통받는 놈의 관계자, 자식들이 악해서 연좌로 걸렸다든지(둘째 친구 빌닷) 고통받는 놈의 벌이 그가 지은 죄보다는 가벼우니 입 닥치라는 식(셋째 친구 소발)의 말장난으로 대답하여 질문을 회피했고 이는 당연히 알맞은 대답이 될 수 없었다. 특별한 악의도 없었는데 고통받고 보상받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는다고 좋은 일만 생긴다는 논리와도 다른 결론이다. 즉, 욥이 복받은 내용이 서술된 에필로그는 하느님의 행동을 예측하려고 하거나 토다는 것은 불경하며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뜻인 동시에 '''하느님의 뜻을 말해줘도 우리의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도 내포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