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욥기 (문단 편집) === [[악신론]]적 해석 === 반면 상기된 기독교나 아브라함 계통 종교의 관점에서 서술된 해석을 떠나, '''[[악신론]]적인 해석도 가능하다'''. 악신론을 채택한다면 욥기의 핵심을 꿰뚫고 있는 핵심 주제 중 하나인 [[악의 문제]]는 물론 쉽게 해명이 되며, 하느님에 대한 아브라함 계통 종교적 변증이란 그저 "권력만 많고 책임은 제로인 신이 알면서도 싸질러 놓은 현실을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자들이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생기는 [[인지부조화]]를 인정하지 않고 2-3천년째 새로운 핑계를 내놓으며 정당화, [[희망고문]], [[가스라이팅]] 하는 것" 쯤에 불과하게 된다. 하느님이 욥에게 "내가 XX를 창조하고 있을 때 너는 어디서 뭘 하였느냐?", "네가 옳기 위해 나를 심판하겠느냐?"는 식의 고압적인 태도에 대해선 소위 계급장 때놓고 상식적으로 생각할 경우, 논쟁에서 할말이 없어졌지만 권위밖에 남아있지 않은 [[높으신 분들]]이나 [[꼰대]]들이 겁주는[* 소위 "불평은 적당히 했으면 눈치 껏 기어라. 니가 지금 신을 이기려는 것이냐? 그럼 니가 하느님 해볼래?"] 압력 정도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여기에서 욥은 자신에게 동문서답을 하는 하느님의 [[논점일탈의 오류]]를 지적하며 "그래서 어쩌라고요? 그게 나랑 무슨 상관도 없는 멀고 원대한 곳에서 답을 가져 오는데요? 그래서 누가 내 동의 없이 나를 창조하라 했나요?" 라는 식의 [[반출생주의#s-2.3]]([[https://www.biblegateway.com/passage/?search=%EC%9A%A5%EA%B8%B0+3%3A1-13&version=KLB|욥기 3:1-13]])적 관점으로 반박[* "반박"이라고 표현했지만, 하나뿐이었던 가족을 모두 잃은 욥의 입장에선 정신줄 똑바로 잡고 이성으로 반박하며 감정적이 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해도 틀릴 건 없게 된다. 소위 고차원의 무한한 하느님은 저차원의 유한한 피조물들의 사정이나 문맥따윈 이해할 필요없이 조금만 실수를 지어도 죽을 죄[* "죄의 대가는 죽음이지만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로마서 6:23)]로 만들어 유한한 존재의 유한한 죄에 무한을 곱해 [[지옥]][* 혹 기독교에서 그 끔찍함이 강조되듯 [[굴라그]], [[아오지 탄광]]보다 끔찍한 곳에 비유도 가능할 것이다.]이라는 형벌을 줘도 되는 한편; 자신의 선택없이 타인의 의지로 "태어남을 당한" 저차원의 유한한 피조물들에겐 종교적 변증론들이 "고차원의 무한한 하느님께서 그 당시 그래야만 했던 시대상의 문맥을 고려해야만 하는", "복잡 미묘한 사정과 영원을 내다본 '놀랍고 원대한 계획'과 지혜가 있으셔서 감히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기 전까지 끝없이 인내를 가지고 이해하려고 [[노오력]]해야 하는[* 골 때리게도 정반대의 논리도 자주 볼 수 있다. [[예정설|예정설]] 혹 이중예정설을 강력히 주장하는 [[장로교]]같은 개신교 교파들의 경우 [[노오력]]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강조하다가 [[선민사상]]스러운 논리가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 결론으로 귀결되는, 피조물 개인이 동의 한 적도 없는 불공정 계약, 말그대로 [[프리드리히 니체#s-3.3.2|노예 계약]]이며 [[갑질]]일 뿐이다. 하느님이 욥에게 고압적인 태도와 동문서답을 한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창조주의 원대한 계획'이고 '공의'고 '사랑'이고 말고를 떠나 현대적 윤리관 및 상식만 적용해서 해석해 본다 한들: 1) 남이 싫어하는 것을 동의나 이해조차 구하지도 않고 더 높은 뜻과 창조주라는 이름하에 자기가 맞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멋대로 사탄과의 도박 내지 내기[* 호교론자는 이를 "믿음을 시험하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것도 생각해보면 성경에 사람이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경고 (예로 출애 17:2, 마태오 4:5-7)는 강조하면서 역으로 하느님이 사람을 시험하는 건 괜찮다는 얘기인지 질문을 할 수 있다. 그저 '창조주'라는 이유로? 그것도 이미 결과를 알고 있기에 시험할 필요 부터가 없는 높디 높은 전지적인 존재께서?][*그러나 시간을 초월한 야훼가 미래의 결과를 알고 있다는 것은 어쨌든 필연적으로 그 일이 이미 과거나 현재에 일어나야하는 것이기에 "미래를 알고 있으니 시험할 필요도 없지 않느냐?"는 우문이다. 오히려 시험의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에 시험이 필연적이다. 시간을 초월한 야훼는 시간의 흐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야훼가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기독교 세계관에서의 미래라는 것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무수한 가능성으로 이루어진 변수가 아니라 이미 실현이 예정된 단 하나의 결과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기독교 세계관에는 [[평행세계]] 이론 따위가 없다 즉, '''욥이 시험을 통과한 미래가 있고 시간을 초월하는 야훼가 그걸 알고 있기에 현재의 욥은 시험을 통과한 미래의 욥이 되기 위해 현재 시험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 나 강행한 것이 핵심 문제고; 2) 남의 소중한 것(특히 가족)을 지 멋대로 주고 뺏고 병주고 약주면서 자신을 오직 긍정적인 마인드로만 봐주길 바라는, 인간이었다면 아이들 떼 쓰는 수준의 유치한 자기중심적 논리를 "더 높은 차원", "더 높은 뜻" 같은 신비의 베일 뒤에 숨어서 펼치는 것이 핵심 문제며; 3) 자기가 남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인정하거나 반성하는 모습조차 없이 [[적반하장]]의 뻔뻔함을 보이는 것이 또 핵심 문제다. 이런 논리는 단지 창조주이자 신이라는 권위을 가졌다는 이유([[https://www.biblegateway.com/passage/?search=%EB%A1%9C%EB%A7%88%EC%84%9C+9%3A18-23&version=KLB|로마서 9:18-23]])와, "욥 네 자신이 의인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내지 "의인은 없다"([[https://www.biblegateway.com/passage/?search=%EB%A1%9C%EB%A7%88%EC%84%9C+3%3A10-19&version=KLB|로마서 3:10-19]]) 따위의 현실성 없는 이상만 아득한 신적 기준을 내세워 학대를 정당화 하며, 자신의 뜻, 자신의 영광, 자신의 무결함만을 관철하는 전 우주적 [[독재자]]이자 [[폭군]]의 논리일 뿐이며, [[코즈믹 호러]]임을 보여줄 뿐이다. 더 나아가 객관적으로 피조물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한들, 사람이 전지전능한 신이 선하든 악하든 싫다고 덤벼서 무슨 이득을 볼 것이 한 푼도 없다. 피조물이 미쳤다고 자신의 파괴를 각오하고 대들지 않는 이상, 인간의 현실은 진실이 어떻든 단지 자신의 생명하나 건져 살아남기 위해 꼬리를 내리고 신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아부나 해야 하는, "[[자유의지]]"라는 책임만 많고 권리는 말 뿐인 [[답정너|강요된 선택]] 밖에는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브라함 계통 종교가 이런 식으로 주장한 신의 선함에 대해 그 마음을 진심으로 느끼지도 설득 되지도 못한 사람들의 입장에선, 내세의 영원한 [[요덕 제15호 관리소|요덕수용소]]에 가지 않기 위해 폭군 앞에서 설득당한 척 눈물을 흘려 살아남아야만 하는 북한 주민이 자신의 폭군에게 보여주는 것과 같은 억지감동일 뿐이다.[* 앞서 야훼의 시간초월성을 간과하여 나왔던 우문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야훼의 전지성을 간과한 것이다. 억지감동으로 야훼를 속일 수 없으며, 무신론적 관점이라면 모를까.. 야훼라는 신의 전제에는 모든 피조물들의 존재의 근원이라 존재함 그 자체로 모든 피조물의 공허함을 충족, 다른 말로 모든 고통을 위로할 수 있다는 점이 깔려있다. 앞서 '''천국 갔겠죠^^'''역시도 그렇고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기독교 세계관 에서는 야훼가 주는 위로를 넘어서는 고통은 존재할 수 없다. 야훼가 그 크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같은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세계관이라는 말이다. 흔히 창작물에서 나오는 "내가 이렇게 힘들었는데 당신이 뭘 알아?!"라는 사이다적 대사는 기독교 세계관 안에선 나올 수가 없다. 불경해서.. 따위의 이유가 아니라, 그냥 단순히 야훼가 욥 자신보다 욥에 대해 그것이 욥의 기쁨이든 고통이든 더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세계관이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