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용병 (문단 편집) === 단점 === > '''"전쟁은 도적[* 여기서 도적은 용병을 일컫는다.]을 만들고, 평화는 그들을 [[실업|교수형에 처한다.]]"[* 그런데 이는 마키아벨리가 왕들의 신임을 얻어 취업을 하기 위해 시민군을 지나치게 밀어주고 나머지 방식들(용병)은 다 쓰레기다 라고 주장한 것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걸러들어야 한다. 자세한 것은 [[군주론]]에 나와있다.] ''' >---- > '''마키아벨리''' 나라 꼴이 막장으로 치달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봉급이 나오지 않거나 전황이 밀려버리면 우루루 이탈해버리거나, 본국의 정치가 불안정한 때에는 용병대장이 쿠데타로 직접 나라를 접수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용병은 통제가 잘 안되기 때문에 약탈을 비롯한 잔혹행위를 심하게 저지른다.[* 다만, 시민병이나 징집병 일부는 때로는 용병들보다 심한 경우도 가끔씩은 생기곤 했다. 대표적으로 마피아 정치를 하며 귀족들과도 패싸움을 벌이던 고대 로마의 시민병들의 잔인함(적의 시체를 잘 매장해 주는 대신 팔다리를 썰어댔다)이 용병과 용병 생활에 익숙한 그리스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시민군이라고 할 수 있는 [[나치 독일군]]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상습적으로 민간인 및 포로 학살과 대규모 [[약탈]]과 [[강간]]을 했다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더구나 프랑스 민중들 역시 영국 귀족들보다 식민지를 가혹하게 대우하였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예외의 사례이다. 대부분의 시민병/징집병들은 용병들보다 더 잘 통제됐고 [[전쟁범죄]]도 더 적었다.][* 다만 잔혹행위를 심심하면 저지르던 용병들은 원래부터 그런 인간들로 유명한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 않은 용병들의 경우는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행위를 어이없이 보기도 했다. 그냥 전쟁을 잘하던 인간들 중에 그런 인간들이 많아서 좋지 않은 이미지를 얻었을 뿐이다.] 용병들은 약탈을 비롯한 잔혹행위를 고용주가 막으려 들면 오히려 고용주를 죽이고, 심지어 고용주의 가족들이나 그 영지의 사람들을 잔혹하게 학살하고 강간하고 약탈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그래서 고용주들은 용병들에게 승리하면 며칠간의 자유로운 약탈을 비롯한 잔혹행위를 통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등의 방법으로 용병들을 겨우 통제했었다. 그렇지만, 르네상스 당시 이탈리아 용병들은 약탈을 덜 했는데, 그 이유는 간단한데 여기서 계약이 끝나면 그 다음은 누가 그들을 고용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가 미래의 고용주가 될 수도 있는데 시덥잖게 약탈을 시도했다가 척을 지면 앞날이 보장되지 않게 된다. 그냥 당장 좀 벌어보고자 약탈하는 경우가 절대 다수였지만, 그래도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는 약탈이 비교적 적었다. 더구나 징집병 미화와 달리 민중 십자군 같은 군대는 의외로 전쟁보다 부수적인 것[* 전쟁보다 학살약탈강간 같은 자신의 욕망을 마음대로 충족시켰다.]들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악명이 높았다.[* 귀족들의 군대도 학살, 약탈을 했지만 백성들을 징집해서 만든 군대도 마찬가지거나 더 심해서 같은 백성들에게도 딱히 신뢰를 받지 못하였고 그래서 맨날 귀족들에게 패배했다.][* [[https://www.quora.com/What-happened-to-disabled-people-in-the-Soviet-Union/answer/Misha-Firer?ch=10&oid=278035111&share=edeab9dc&srid=6Luzi&target_type=answer]] 소련 참전용사들의 비참한 최후와 [[스레브레니차 학살]], 중동과 동남아에서 발생한 끔찍한 혼란은 민중이 원하고 선택한 결과였다.] 전문적인 군인들은 의외로 전쟁이 밥벌이라 학살이나 약탈도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었고 수입[* 스위스인들도 경제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데려가서 대우하기도 했고 그 결과로 산업이 발전했다.]에 더 관심이 많아서 전쟁범죄가 어느 정도 억제되었다. 하지만 카를 5세의 군대인 황제군이 로마를 함락시킨 [[로마의 약탈]] 무렵, 가장 약탈과 살인으로 악명을 떨친 집단은 독일인 용병들인 [[란츠크네히트]]였다. 이유는 그들이 워낙 오랫동안 월급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14세기 동로마에 고용된 용병들인 [[카탈루냐 용병]]들은 고용주인 동로마가 막대한 금화를 털어 월급을 주는데도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높은 봉급을 요구하다가 질려버린 동로마에 의해 대장인 [[루지에로 데 플로르]]가 죽임을 당하자, 오히려 대장의 복수와 약탈을 위해 동로마 곳곳에서 마구잡이로 잔혹한 학살과 약탈을 벌여 동로마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이것과 별개로 봉급이 밀리는 경우 이탈하거나 태업을 하며, 최종적으로 봉급을 고용주한테 강제징수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건 고용주가 문제긴 하지만. 더 심한 경우는 아예 고용주의 뒷통수를 치고 반란을 일으켜 고용주의 국가를 빼앗으려 하기도 한다. 포에니 전쟁의 원인이 된 '마메르티니' 용병부대나, 13세기 [[동로마 제국]]에 고용되었다가 역으로 반란을 일으키고 [[아테네 공국]]을 찬탈하기까지 한 [[카탈루냐 용병]] 등이 그러했다. 사실 프랑스 혁명 당시의 시민병들은 프랑스 본국의 혼란으로 원활한 보급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거의 전적으로 그들에게 '해방된' 지역으로부터 보급을 의존했고 잔혹행위와 약탈이 용병들에 비해 적지 않았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의 군대가 이런 면에서 유명하지만, 아무래도 나폴레옹이 악인들을 뛰어난 군인으로 여겨 총애한 면도 있고 본인부터가 해적 가문의 후예[* 나폴레옹의 야만성을 기존 귀족들은 외국은 물론 프랑스에서부터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라 그럴 수도 있다. 이러한 현지조달에 의존하는 방식은 비옥한 지역에서는 보급에 얽매이지 않는 기동으로 강한 힘을 발휘했지만 가난한 지역인 [[이베리아 반도 전쟁|스페인]]과 [[러시아 원정|러시아에서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현재의 PMC(Private Military Company)들은 이런 용병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 직원들은 대부분 세계의 유명 [[특수부대]] 출신들인데다 대원 개개인 한 명 한 명이 각자 전투의 프로라곤 한다. 그러나 여전히 윤리 문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는데, 일례로 유명한 PMC '[[블랙워터]]'의 경우 이라크에서 자신들이 신변의 위협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무차별 총격을 가해 수많은 민간인들이 살해되게 하기도 했다. 제일 황당한 케이스는 이라크 시내에서 차 타고 가다가 길이 막힌다는 이유로 도심 한복판에서 차에서 내려, '''인근 민간인들 상대로 무차별 난사'''를 한 사건이다. 이 일이 얼마나 황당했는지, '''[[미국 의회]]에서 [[청문회]]까지 열렸고''', 그 때 블랙워터 측에서 내놓은 주장이 '전쟁 중이었으니까 자기 보호를 했다'라는 주장이었다. [[블랙워터]]는 2년간 195건의 총기사건에 휘말렸고, 이는 모두 [[블랙워터]]에서 먼저 발포한 사건이었다.[* 이 문제는 [[블랙워터]]가 특히 [[네이비 씰]] 출신이 많아서 심각하다. [[미합중국 육군 특수작전부대|그린베레]] 같은 경우 현지 우호 세력을 만드는 민사작전 등을 한다. 이는 겉으로 보이는 성과는 적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네이비 씰]]은 그냥 가서 다 때려 부수는 직접 타격을 많이 해서 눈에 보이는 전과는 많지만 민사 개념이 없어 적을 양산한다.] 더군다나 과거에서부터 용병들의 고용주로 유명했던 중동/아프리카 국가들의 용병 사용을 본다면 '전문노동직'이라기보단 '막노동 직종'이라고 보는 것이 어울릴 정도로 굉장히 심하게 굴린다. 단순히 자국의 민주화 혹은 인권 운동을 탄압하는 것을 넘어서 타국과의 전쟁에 동원하거나 지연전용 미끼로 던지거나, 아니면 압도적인 기량 차이를 보이는 적들에게 어떻게든 맞아라라는 식으로 용병들을 던지는 것에 가까운 운용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보다는 비숙련자들이 더욱 많으며, 보통 이들은 전장에서 빠르게 목숨을 잃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