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용산구(선거구) (문단 편집) === 13대 총선 이전 === 제헌국회에서는 한국민주당 [[김동원(1884)|김동원]] 후보가 당선되었고, 2대 총선에서는 무소속 [[황성수]] 후보와 대한국민당 [[남송학]]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후 3대 총선에서는 두 의원이 자유당으로 옮겨 당선되며, 보수성향 지역임을 확인했지만 4대 총선에서는 민주당이 [[김원만|두]] [[엄상섭|석]]을 차지했다. 5대 총선에서도 민주당이 [[김원만|두]] [[장면|석]]을 모두 가져갔다. 군사정권 초반기인 6대 총선부터 8대 총선까지도 모두 야당이 이겨 야당 텃밭이 되었고[* 6대 국회 임기 도중 이 지역의 의원이던 [[민중당(1965년)|민중당]] [[서민호]] 의원이 [[한일기본조약]]에 대한 반대의 뜻을 내세워 사퇴하면서 그 해 11월 재보궐선거가 열리게 됐는데 이때 [[한국독립당(1963년)|한국독립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던 사람이 바로 [[김두한]]이다. 물론 [[서민호]]와 [[김두한]] 모두 야당 정치인이었다.] 중선거구제가 실시된 9대 총선도 1,2등 모두 야당인 신민당이 차지했다. 그러나 10대 총선에서 1위를 차지한 민주공화당 [[박경원(1923)|박경원]] 후보가 당선되며 다시 보수화된다. 당시 용산의 개발과 군사관련시설 건설, 외국인 유입으로 용산이 보수화된 것이다. 이후 11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 [[봉두완]] 후보의 1위 당선, 12대 총선의 2위 당선으로 보수화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