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용인시 (문단 편집) == 지리 == 용인시는 평야가 발달한 주변 지역들[* 이천시, 수원시, 안성시 등]과는 다르게 저산성 구릉지 지형이 발달한 곳으로 평야가 별로 없다. 특히 시 중심부의 지형을 보면 두드러진다. 이천시, 수원시, 안성시의 경우 중심부가 비교적 평탄하고 넓어서 지역 사이의 이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데 반해, 용인시의 중심부는 주변이 300~400m 가량의 산지로 둘러싸인 좁은 분지 형태를 하고 있어 시세의 확장이 상대적으로 어려웠다. 용인시의 지질 형태는 전 지역에 선캄브리아기의 호상편마암과 화강암질편마암이 분포하고 서단에는 대보화강암이, 구성면에는 각섬석이 나타난다. 토양은 적황색토와 암설토가 나타난다. 이런 용인의 지형의 특징은 오늘날 용인시의 도시 구조와 생활권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처인구 지역은 광주로 흘러가는 경안천/양지천 유역(용인시내, 포곡, 모현, 양지), 남쪽 [[안성천]]으로 흘러가는 진위천 유역(이동, 남사), 남한강 방면으로 흘러가는 청미천 유역(백암, 원삼)이 있고 각각을 경계짓는 산줄기로 분리되어 있다. 기흥구와 수지구는 이러한 처인구와도 분리되어 부아산-석성산-법화산을 잇는 300~400m 높이의 산줄기로 가로막혀 있으며, [[탄천]]을 따라 성남 방향으로 평지가 열려 있는 모양새이다. 다만 행정적으로 양지, 원삼, 백암면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조선 [[태종(조선)|태종]]때부터 하나의 행정구역(용인현)에 속할 정도로 통합되어 있었는데, 수지구(수지)-기흥구(기흥)-처인구(용인)를 잇는 구간이 [[영남대로]]에 속했기 때문에 그나마 동질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래에서도 있듯 일반적으로 "'용인"'은 [[처인구]]의 구 용인읍 지역을 지칭한다. [[처인구]]의 구 용인읍 일대에 용인시청, 시외터미널 등 용인을 대표하는 시설물은 죄다 그 쪽에 있다. 따라서 [[기흥구]], [[수지구]]는 관용적으로는 용인이라는 명칭과 대도시 시역에 설치된 행정구역의 단위인 구를 따라 지칭한다. 그나마 요즘은 인구 100만의 대도시 답게 '용인시'란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용인스러운' 거대 청사들에 용인이 적혀있기 때문인지 처인구 외의 지역 주민들 중에서도 용인에 산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기는 했다. 어릴 때 부터 용인시에 거주한 경우는 지역사회교과서인 '우리고장 용인'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과거 용인시청이 있는 처인구를 용인시로 칭하였지만 최근에는 용인시를 가리켜 말할 때 수지구나 기흥구도 포함하는 경우가 늘었다. 다만, 현대에 와서 용인시 근처에 사는 사람들에게나 택지개발 지역을 얘기하면 알아듣기라도 하지, 더 먼 지역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용인'이라고 하면 먼저 에버랜드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태반이긴 하다. 그나마 과거부터 잘 알려진 용인시 구 단위 동네 정도만이 외지사람들에게 인지될 뿐. 사실 그마저도 성남, 서울, 수원 등 수도권 사람들이나 그렇지 전라도나 경상도처럼 멀리 떨어진 동네는 2022년 현재에도 용인이라면 에버랜드를 먼저 생각한다. 다만, [[용인시/역사]] 문서를 보면, [[기흥구]]로 편입된 구성지역은 삼국시대부터 구한말까지 약 1500년 동안 용인의 중심이었다. [[일제강점기]] 용인의 군청소재지가 구성면에서 수여면(현재 [[처인구]] [[김량장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줄곧 용인의 행정 소재지 기능을 해온 곳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