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용인시/역사 (문단 편집) == [[대한민국]] == [[파일:용인시 휘장(1979-1997).svg|width=30%]] 당시 사용된 휘장. 1963년, 고삼면이 안성군에 편입되었다. 1971년, [[영동고속도로]]가 수려선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개통이 되면서[* 그리고 수려선은 이듬해인 1972년에 폐선된다.] 기흥면 신갈리와 용인면이 지역 중심지로서 강화되었다. 1973년, 대통령령 제6542호 [[일제강점기]] 때 일제의 자행으로 변경된 [[수지구|수진면]] [[죽전동(용인시)|죽전리]]는 본래의 수지면으로 복구되었다. 1979년, 대통령령 제9409호 용인면이 용인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대통령령 제11027호 일제강점기 수지면으로 통폐합 된 지내면[* 용인군 지내면: 진위천으로 유입되는 황구지천의 분수계 마을들.]의 여수내, 가산천 유역인 이의리와 하리는 수원시, 남사면의 진위천 유역 진목리와 봉명리 일부는 평택시로 편입되었다.[* 현재 수원 이의동, 하동 [[광교신도시]], 평택 진위면 일대.] 1985년, 대통령령 제11772호 기흥면이 기흥읍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 기흥읍 영덕리 일원 66만㎡가 수원시로 편입되었다.[* 현재 수원 영통동 일대.] 용인시는 근 20년 가까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유입된 도시이다.''' [[1995년]] 당시 약 24만명 인구의 전형적인 수도권 도농복합시였던 곳이 [[1996년]] 군에서 시로 승격되어[* 참고로 1996년에는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해 명칭이 변경된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개칭되고, 용인자연농원이 [[에버랜드]]로 개명되었다. 이 시기 용인에 거주했던 사람은 1996년 용인시의 승격, 초등학교 개칭, 에버랜드 명칭 변경, 캐리비안 베이 개장 모두가 한 해에 일어난 것으로 인상깊게 남아 있다.] 서울의 [[위성도시]]로서 [[난개발/경기도|난개발]]이 되어 인구가 급증하였다. 다음의 표를 통해 다른 도시들과 비교해보면 그 발전이 가파르다. || 연도 || [[용인시]] 인구 || [[평택시]] 인구 || [[안산시]] 인구 || [[안양시]] 인구 || [[부천시]] 인구 || [[성남시]] 인구 || || 1995년 || 244,763명 || 321,636명 || 504,615명 || 593,142명 || 779,745명 || 886,663명 || || 2000년 || 392,133명 || 356,103명 || 566,912명 || 581,166명 || 775,815명 || 924,390명 || || 2005년 || 681,344명 || 383,976명 || 679,011명 || 625,350명 || 855,359명 || 983,075명 || || 2010년 || 876,550명 || 419,457명 || 714,891명 || 621,714명 || 875,204명 || 980,190명 || || 2015년 || 975,746명 || 460,532명 || 697,885명 || 597,789명 || 848,987명 || 971,424명 || || 2020년 || 1,068,519명 || 520,649명 || 653,575명 || 561,069명 || 826,845명 || 941,527명 || 시 승격 이전 24만명에서 2015년 97만 5천명으로 거의 4배 가까이 상승하는 기염을 토해 기초자치단체 중 가장 높은 인구 증가를 보여주고 있다. 위의 표를 보다시피 송탄까지 통합했던[* 1981년 송탄시, 1995년 평택시.] [[평택시]]를 2000년 이전에 제쳤고, 2000년부터 2005년 사이에는 [[안양시]]와 [[안산시]]를 제치고, 2005년부터 2010년 사이에는 [[부천시]]를, 2010년부터 2015년 사이에는 [[성남시]]를 제쳤다. 현 인구수 증가세대로라면 2015년부터 2020년사이에는 [[고양시]]를 제칠 것이 거의 분명해보이고[* 2020년 6월 기준, 6천명이 채 차이나지 않는다.], 만약 미개발 지역인 [[처인구]] 동부의 면 일대까지 대규모 개발이 된다면 [[수원시]]를 제치는 것도 가능해 보일 정도이다. 다만 이건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볼 수 있는데, 도농복합시 개념 도입 이전 여러 자치단체로 쪼개지고 해체된 [[시흥군]]과는 달리[* 공교롭게도 위에서 비교한 시 승격 짬밥이 좀 되는 도시들인 [[안양시]], [[안산시]]는 모두 시흥군에서 갈라져 나온 도시들이다.] 1995년 도농복합시 제도가 도입되고 난 직후에 시로 승격한 덕분에 예전의 [[시흥군]]처럼 여러 지차체로 분리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행정구역 분리를 거치지 않고 인구 90만 명 돌파를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행정구역이 갈라지지 않고 통째로 시로 승격하여 [[1기 신도시]] 효과를 받은 [[고양시]]의 인구 증가 수준이 비견될만하다. 이런 높은 인구 증가로 인해 [[2004년]] [[대도시 특례]]를 받는 도시로 승격되었다. 또 기초단위 승격도 빈번했다. 1996년 수지면이 수지읍으로 승격되었고 내사면이 [[양지면]], 외사면이 [[백암면]]으로 개칭되었다. 2000년에는 구성면이 구성읍으로, 2001년에는 수지읍이 수지출장소로, 2005년 10월 31일에는 [[수지구]](수지출장소), [[기흥구]](구 기흥읍+구성읍)[* 용인시 3개 행정구로 개편되기 전 이 지역의 명칭을 관계자들은 옛 이름인 '구흥(구성+기흥)'으로 하자고 건의했지만 어느 [[삼성전자|삼성전자 기흥 공장]]에서 당시 구성읍의 인구는 적었고, 기흥읍에 있었던 삼성전자 기흥 공장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기흥'으로 하자고 내세워 기흥구로 굳혀졌다. 참고로 1983년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 농서리 산 24번지 일대에 들어선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기흥 단지는 세계 반도체 업계에서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통하고 있었다. 삼성전자에서는 기흥 공장이 반도체와 성분이 비슷한 '그릇이 흥한다'는 뜻을 가진 데 반해 구흥(驅興)은 '당나귀가 흥한다'는 의미라서 내심 지명 변경을 반대했었다.], [[처인구]](나머지 지역)의 일반구가 설치되었고, 포곡면이 [[포곡읍]]으로 승격되었다. [[2017년]] 12월에 [[모현읍|모현면]], [[이동읍|이동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2021년 2월에 남사면이 [[남사읍]]으로 승격되었다. 2022년 1월 13일 [[대도시 특례/특례시|특례시]]로 지정되었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용인시, version=329)] [[분류:용인시의 역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