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용호동(부산) (문단 편집) == 역사 == 부산에 사는 시민들의 기억에서는 용호동은 나환자촌으로의 기억이 제일 첫 시작일 것이다. 해방 이후 용호동 산 1번지에 용호농장이라는 나환자촌이 만들어졌었다. 그래는 한때는 문둥촌이라 불리우며 배척받으며 천대받는 동네였으나 점점 나환자들이 사망하고 떠나면서 재개발이 되어서 용호동 SK 뷰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잊혀진 역사가 되었다. 오륙도를 바라보는 장자등 일대(정확하게는 [[오륙도 SK뷰]] 108동과 109동 중간지점에서 바다방향으로 수십m 앞의 지점)에 일제강점기 때 1924년부터 주민들이 강제동원되어 대마도의 토요포대와 함께 대한해협 봉쇄를 위한 포진지가 구축되었다. 한반도 해안에 설치되었던 일본군 포대들 중 가장 큰 구경의 포를 설치했던 곳으로, 원래 [[아마기급 순양전함]]으로 건조된 [[아카기(항공모함)|아카기]]에 탑재되었던 사거리 30km의 구경16.1인치(410mm) 45구경장 함포 2문 1세트인 포탑이 워싱턴 군축조약에 따라 아카기가 항공모함으로 개장되면서 분리되어 통째로 이곳과 대마도에 설치되었다고 전해진다. 혹은 건조중단 및 폐기처리된 [[토사(전함)|토사]]에서 분리된 거라는 설도 있다. 2차대전이 끝날 무렵 미군의 [[B-29]]가 날아와 약 4발의 폭탄을 투하해서 상층부가 날아갔다. 전후 대포 및 시설은 미군이 해체했고, 어렵던 시절 주민들이 파괴된 상층부의 드러난 철근을 뜯어가고 탄약고 등의 공간은 젓갈 및 어구 저장공간으로 쓰다가 현재 장자등의 포대자리에는 SK뷰 아파트가 올라갔고, 나머지 벙커와 시설은 군사구역 내에 묶여 방치상태다. 막사와 탄약고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 및 보존에 대한 논의가 진행중이다. [[http://blog.daum.net/nongbau7/15956092|상세한 정보는 여기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