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용흥궁 (문단 편집) === 강화도령의 배경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철종 (복원).jpg|width=100%]]}}} || || {{{#gold '''용흥궁에 살았던 철종 이변(초명 이원범)'''}}} || [[별명]] '강화도령'으로 널리 알려져있는, 훗날 [[철종(조선)|철종]]이 될 이원범은 [[전계대원군|전계대원군 이광]]의 3남으로 1831년([[순조]] 31년) [[한성부]] 경행방(慶幸坊) 향교동(鄕校洞)[*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낙원동]], [[익선동]] 일대.]에서 태어나 한동안 그곳에서 자랐다. 이원범은 어린 시절에는 그의 형[* [[회평군|회평군 이명(혹은 이원경)]], [[영평군(1828)|영평군 이경응(초명은 이욱)]].]들과 함께 [[조선/왕사|조선 왕실]]의 몇 안되는 [[남자]] 왕족으로 그럭저럭 대우를 받으며 살았다. 이후 아버지가 10살 때 [[사망]]한 것 말고는 큰 어려움 없이 지냈지만, 14살 때인 1844년([[헌종(조선)|헌종]] 10년)에 민진용(閔晉鏞)이 큰형 [[회평군|이명]]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가 발각되면서 기구한 [[운명]]을 맞았다. 이명은 [[사형]]당하고 이원범은 [[연좌제]]로 작은형 [[영평군(1828)|이욱]]과 같이 [[교동도]]로 유배갔으며, 얼마 못가 [[강화도]]로 옮겨졌다. 이후 형과 함께 19살 때까지 5년간 [[농사]]를 짓고 나무나 베던 원범은, 강화도에서 [[왕족]]이 아닌 평범한 [[백성]]으로 생을 마칠 '''뻔'''했으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