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루크 (문단 편집) == 역사 == ||||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파일:우루크 이라크.jpg|width=500]]}}} || || '''우루크 유적 앞에 있는 '지상의 문자 발상지' 팻말'''[* 참고로 뒤에 언덕처럼 보이는 곳은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최고신인 [[안(수메르 신화)|안]]에게 바쳐진 [[지구라트]]이다. 하얀 사원이라고도 불린다.] || 기원전 4000년부터 약 2000년에 걸쳐 번성하였고, [[고고학자]]들은 이 우루크를 [[아카드|아카드 제국]]이 출현하기 전까지 당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전 4000년부터 기원전 3100년까지의 시대는 아예 [[우루크 시대]]라고 칭해질 정도이다. 기원전 4000년대 중반 즈음 [[신석기]]가 저물 때, 우루크에서는 상당히 실용적인 토기가 생산되었다. 그 이전 시기의 토기는 귀족적이고 장식적이었던 데 반해, 새 토기는 실용적 목적에 충실한 '''대량 생산품'''과 같았다. 고대근동학자들은 이것이 인구 증가와 함께 비롯된 토기 수요의 증가로, 더 많은 그릇을 더 빨리 생산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또한 이와 비슷한 시대에 '''도시가 출현'''했는데, 성벽으로 둘러싸인 지역은 그 이전에 볼 수 없는 형태의 것이었다. 이를 ''''우루크 현상'''' 또는 ''''우르크 혁명''''이라고 한다. 도시의 시작과 함께 우루크 사회에는 분업화와 전문화가 일어났다. 각종 장인들, 토목 기술자들, 행정가들이 생겨났고, 각종 체제와 표준 단위가 생겼으며 결국 문자 생활이 화려하게 시작되었다. 고고학적으로도 동시기 문명인 [[고대 이집트|이집트]]가 우루크에서 문자의 아이디어를 받은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야말로 고대 문명의 선구자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우루크의 면적은 대략 70헥타르{{{-2 ([[경복궁]]이 43헥타르)}}}이고, 주변의 위성 마을까지 합치면, 최대 210헥타르{{{-2 ([[여의도]]가 290헥타르)}}} 정도라고 한다. [[초기 왕조 시대]]에 들어서는 [[길가메시 서사시]]로 유명한 [[길가메시]]가 기원전 2800년 혹은 기원전 2500년 무렵에 성벽을 쌓고 [[키쉬]]의 왕 아가를 격파하여 우루크의 패권을 확립했다고 전해진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당연히 [[신화]]적인 내용이 포함된 전설의 이야기이고 길가메시라는 인물 자체도 역사적 실존 여부는 학계에서 불명확하게 보지만 실존 가능성도 많이 제기된다.] [[우르]], [[키쉬]], [[라가시]] 등의 강력한 도시들과 경쟁하면서 수메르의 패권 확립을 반복하다가, 기원전 2350년경 수메르의 도시 중 하나인 [[움마]]의 왕 [[루갈자게시]]가 수메르의 도시들을 하나씩 정복하고 우루크까지 정복하여 우루크 3왕조를 형성하고 수메르를 통합하면서 우루크는 통합된 수메르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후 기원전 2334년경에 [[아카드]]의 [[사르곤]]이 수메르를 정복하고 우루크까지 함락시키면서 쇠퇴하게 되었다. 후에 아카드 제국이 구티족의 침입으로 멸망한 후 우루크의 왕 우투헤갈이 구티족을 몰아내고 [[우르 제3왕조]]가 들어서면서 다시 부흥했다가 우르가 [[엘람]] 왕국의 침입으로 멸망하면서 우루크 역시 함께 쇠락하였다. 이후 신[[아시리아]]와 [[신바빌로니아]] 시대에 들어와서 다시금 부흥하였고, 한동안 메소포타미아의 주요 도시로서 번창한다. [[헬레니즘]] 시기 때만 해도 4만의 인구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셀레우코스 제국]]이 멸망하고 [[파르티아 제국]]의 정복 및 [[유프라테스 강]]의 진로 변경과 함께 차차 쇠퇴하다가 [[사산 제국]] 때가 되면 소수의 [[만다야교]]도들이 사는 마을로 전락하였다. 그마저도 [[이슬람]] 세력이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한 이후에는 완전히 몰락하고 서기 7세기경에는 폐허가 되어 사라졌다. 우루크 유적은 1849년 [[영국]]의 고고학자인 윌리엄 로프터스에 의해 발굴되었으며 이후에도 여러 고고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다. 2016년 우루크 도시 유적이 [[우르]], [[에리두]] 유적과 자연 습지들과 함께 "[[이라크 남부의 아흐와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우르크, version=58)]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