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르두어 (문단 편집) == 설명 == 현재의 북인도 지역은 페르시아화된 튀르크 왕조들의 영향으로 토착 언어에 페르시아어 어휘와 문법이 대거 유입되었다. 힌디어와 파키스탄 우르두어의 차이는, 전자는 마치 오스만어에서 현대 튀르키예어로의 진전 과정처럼 우르두어로부터 페르시아어 어휘를 들어내고 그 자리에 산스크리트어 어휘를 집어넣은 소위 언어 정화 과정을 거친 것이고, 파키스탄은 그런 것 없이 원래 우르두어를 계속 쓰고 있다는 것이다. 우르두어는 기본적으로 델리 지방 방언을 바탕으로 북인도를 지배해온 이슬람화된 투르크-페르시아 왕조들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언어이다. 무굴 제국이 몰락한 이후 우르두어가 무굴 제국의 궁정 언어인 페르시아어의 지위를 대체하게 되었다. 무굴 제국 부흥 운동이던 [[세포이 항쟁]]이 실패로 돌아가고 무굴 제국이 최종적으로 폐지되자 영국은 서서히 인도의 기득권을 차지하던 무슬림들의 권리를 축소시키고 인구 수가 더 많았던 힌두교도들의 편의를 늘려나가기 시작했다. 이에 [[마하라슈트라]] 일대의 힌두교도들을 중심으로[* 마하라슈트라 지방은 힌두 민족주의 성향인 [[마라타 동맹]]이 나와 무굴 제국에 대항했던 역사를 비롯해서 무굴 제국 및 그 문화에 대한 반감이 강한 지역이었다. 또한 [[뭄바이]] 일대를 중심으로 서구 문물의 유입도 빨랐다.] 우르두어를 인도의 토착 문자인 [[데바나가리]]로 표기하고 페르시아어 어휘들을 다시 제거하고 산스크리트어 어휘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힌디어]]이다. 다만 힌디어도 [[아랍어]], [[페르시아어]] 어휘를 완전히 다 제거하는데는 실패해서 두니야(세상), 키탑(책) 같은 아랍어 유래 어휘, 굴랍(장미), 카거즈(종이) 같인 페르시아어 유래 어휘 일부가 그대로 남아있다. 영국 정부는 관청에서 [[페르시아 문자]] 대신 무슬림들이 읽지 못하는 [[데바나가리 문자]]를 사용하도록 지침을 변경하였다. 1875년 힌두교계에서 기독교 선교사들과 무슬림들의 부흥 운동에 영향을 받은 힌두교 부흥운동 아리야 사마지(Arya Samaj) 운동이 일어난 것을 계기로 힌두교 신문, 잡지 발행부수가 급증하는 힌디어 르네상스가 시작되자 [[사이드 아흐마드 칸]]을 비롯한 무슬림 지식인들은 인도 무슬림들이 인도에서 고립된 소수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커다란 위기의식을 느끼고 우르두어의 현대화 작업에 착수했다. 아흐마드 칸은 우르두어가 힌디어에 뒤쳐지지 않도록 서구 과학 기술 서적을 우르두어로 번역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을 벌였으며, 인도 각지에 대학에서 우르두어 강의도 이루어지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사이드 아흐마드 칸이 서구 과학 기술 용어를 우르두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수행했다면, 그의 제자 [[무함마드 이크발]]은 인문학 서적을 우르두어로 번역하고 우르두어 문예부흥을 이끌었다. 이크발은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헤겔]], [[프리드리히 니체|니체]], [[앙리 베르그송|베르그송]] 철학을 우르두어로 번역 보급하였으며 그의 노력 덕분에 인도의 무슬림 지식인 상당수는 유학파가 아니더라도 헤겔과 마르크스 철학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이해도를 갖게 되었다. 원래 영국령 인도 제국에서 관료로 일하기 위해 영국과 독일에서 법학을 전공했던 이크발은 법학보다는 문학과 철학에 깊이 빠져들었으며, 귀국 이후 우르두어 문학 부흥에 투신하였다. 다만 법학을 완전 내팽개친 것은 아니라 법전 번역에도 관여하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힌디어와 우르두어는 표기하는 문자와 일부 종교적 어휘의 차이만 생겨났을뿐, 사실상 동일 언어이며 식민 통치 시에는 이 둘을 '힌두스탄어(Hindustani)'로 묶어서 '힌디어', '우르두어', '힌두스탄어'라는 단어를 자유롭게 바꿔가며 사용했으나 인도 아대륙이 인도/파키스탄의 두 개 나라로 분리독립하고 각각 '힌디어', '우르두어'를 강조하기 시작하자 '힌두스탄어'라는 단어는 거의 사장되어 버렸다. [[파키스탄인]]과 [[인도인]]들도 힌디어와 우르두어가 사실상 같은 언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힌디어와 우르두어의 주요 차이점은 인사말과 감사 표현 등 기본적인 의사 표현에서 두드러지며 외국어 공부하는 기준으로 중급 레벨 이상의 일상 회화에서 오히려 차이가 대폭 줄어든다. 게다가 힌디어와 우르두어에서 쓰이는 고급 어휘도 공통점을 가진 경우도 있다. || || 우르두어 || 힌디어 || || 인사말 || 앗 살람 알레이쿰[* 아랍어 인사말인데 [[쿠란]], [[하디스]]에서 무슬림들은 서로 앗 살람 알레이쿰이라고 인사할 것을 명하기 때문에 무슬림들은 언어 관계 없이 이 인사를 쓴다.]/السلام عليكم || 나마스테[* 당신에게(떼) 기도한다(나마스)란 뜻이다. 힌두교식 종교적 인사말이라고 볼 수 있다.] || || 감사 표현 || 슈크리야[* 아랍어 감사말 슈크란(شكرًا )이 페르시아식으로 변형된 것]/ شکریہ || 던여와드[* 상서로운(던여) 말(와드)] || || 작별인사 || 쿠다 하피즈[* 하피즈는 아랍어로 가호, 수호를 의미하며 쿠다는 신을 의미하는 단어로 페르시아어 기원이다.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파르시]]들도 작별인사를 할 때 사용한다.]/ خدا حافظ || 알위다[* 이 표현 역시 아랍어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우르두어 사용자들도 흔하게 쓴다. 산스크리트어로 작별을 뜻하는 위다에 아랍어 관사 알이 붙은 형태이다.] || || 존칭 || ㅇㅇ삽,[* 아랍어로 동무에 해당하는 [[사하바]]가 우르두어 사힙이 되고, 이를 일상 회화에서 약어 삽(Saab)으로 축약해서 부른다. ㅇㅇ씨 비슷한 어감으로 이름 뒤에 붙여 부른다.] ㅇㅇ잔[* 페르시아어에서 기원한 존칭으로 ㅇㅇ님 비슷한 뜻이 된다. 형님을 우르두어로 바이잔이라고 부르는데, 힌디어에서는 형제를 바이라고는 불러도 바이잔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 ㅇㅇ지[* Ji, 이름 뒤에 붙여 부르면 존칭이지만, 이름 뒤에 붙이지 않고 그냥 “지”라고 짧게 말하면 “네” 같은 존댓말 대답이 된다. 지 네이(아니요) 같은 예외의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는 존댓말이다. 여담으로 영화 간디에서 인도인들이 간디를 '간디 지'라고 부른다.] || 숫자의 경우 [[0]]만 제외하고 거의 똑같다. 우르두어는 아랍어와 유사하게 시파르(صفر)로 부르지만 힌디어는 산스크리트어로 0을 의미하는 수니아(शून्य)의 영향으로 슈니아라고 부른다.[[https://indianexpress.com/article/opinion/columns/the-story-of-shunya/lite/|#]] 숫자 0을 다르게 부르는 이유는 종교적인 이유보다는 숫자 0 개념을 인도인들이 최초로 확립했다는 바를 기념하자는 민족주의적 이유로, 원래 산스크리트어 발음과 유사하게 사용되는 방언 어휘를 찾아 복원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