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병우/일생 (문단 편집) === 민정비서관 시절 === [[세월호 7시간 30분|청와대 7시간 의혹]]이 불거지고 민정수석실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이 해임된 후인 2014년 5월 [[대통령비서실]]에 민정비서관으로 들어왔다[* 뒤이어 6월에 임명된 민정수석은 [[김영한(공무원)|김영한]]으로 변호사 시절 ‘[[도나도나#s-3|도나도나 다단계 사기사건]]’을 수임한 인연이 있다.]. 그 과정에서 인사검증 결과 '불가' 판정을 받았는데 안봉근 제2부속실 비서관의 압박으로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평가 점수를 높여 준 것으로 [[http://m.news.naver.com/hotissue/read.nhn?sid1=100&cid=1051768&iid=1597840&oid=448&aid=0000186341|드러났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재산을 공개했는데, 총 재산액이 423억 3,230만 원이나 되어 화제가 되었다.[* 여기에는 본인과 부인 명의 예금 183억 2,077만 원,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압구정 현대아파트]](59평형) 등 부동산 66억 8,651만 원, 사인간 채권 165억 8,051만 원 등이 포함돼 있다. 특히 100만 주에 가까운 해외[[국채]](99만 5,000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재산 대부분은 [[골프장]]을 운영하던 장인 이상달 회장[* 기흥컨트리클럽, 정강중기, 정강건설]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에서 일하면서 [[김기춘]] 비서실장으로부터 높은 신임을 얻었다.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청와대 문건유출사건]] 등 까다로운 일들을 무난히 마무리한 덕분이었다. 이때 상관인 김영한 민정수석을 제치고 김기춘 실장에게 직보하는 일이 잦았는데 이 때문에 [[김영한(공무원)|김영한]] 민정수석이 국회 운영위원회 증인 출석을 거부한 뒤 사퇴하는 등 '항명사태'를 일으킬 정도였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조직을 다잡고 일을 밀어붙이는 기질 면에서 김기춘과 우병우 두 사람은 닮은 점이 있다”고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