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스만 (문단 편집) === 공과 실이 교차한 경제정책 === 탁월한 사업가적 수완을 지닌 우스만은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지금까지 대단히 어설프고 기초적이었던 이슬람 세력의 재정 문제를 대대적으로 개혁했다.[* 기본적으로 이슬람이 일어난 아라비아 반도는 오래 전부터 부족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지, 중앙정부를 지닌 국가가 존재하질 읺았으니 이슬람 세력이 [[사산 왕조 페르시아]]까지 쓰러뜨릴 정도로 강력해졌어도 자기가 일으킨 거대 제국을 통치할 역량은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 아부 바크르 시절, 국고가 설치되고 재정 운영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대다수의 수입은 메디나에 도착하는 순간 곧바로 분배되었고, 우마르 시기 대팽창을 통해 막대한 부가 흘러 들어왔지만 대다수는 자선 활동을 위해 분배되고 남는 수입은 병사들의 봉급을 위해 소모되었다. 결국 우스만 이전까지의 이슬람 세력의 재정 정책은 잉여금 축적을 신경쓰지 않는 자선 집단과도 같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넓어진 제국을 관리할 필요성을 절감한 우스만은 이슬람의 어설픈 재정 상태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그를 위해 각종 부서를 신설했다. 그 결과 이슬람 세력은 잉여금을 축적해 국가 집단에 걸맞은 재정정책을 시행할 수 있었으며, 각지에서 필요한 경비를 국고에서 조달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우스만의 정책으로 막대한 잉여금을 적립한 이슬람 세력은 무려 5,000개가 넘는 모스크를 신축하고,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수월하게 만들기 위해 각지에 운하를 만듬과 동시에 도로를 대대적으로 보수하며, 필요하다면 신설했다. 또 농업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우물을 파고, 관개수로를 정비하며, 광대한 황무지를 개간하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다. 반면 지금까지 엄격하게 규제되던 토지 구입은 우스만의 치세 기간에 폐지되어, 반대로 무슬림들에게 토지 매입을 촉구했고, 토지 매입을 원하는 자에겐 국가에서 자금을 융통해주는 정책을 펼쳤다. 그리고 이 정책은 훗날 역사가들이 기록한 초기 이슬람 유력자들이 지닌 전설적인 부의 초석이 되었다. 또 태생적으로 부호였던 우스만의 재정 감각은 무척 검소했던 전임자들에 비해 방만할 수밖에 없었으니, 과거 적절하게 통제되던 관료들의 봉급들은 우스만 시대를 거치며 급격히 늘어났다. 특히 우스만은 그가 총애하는 이들에게는 막대한 사사금을 하사하기를 즐겼으며, 자신과 주요 세력을 위한 궁궐 축조에도 열을 올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