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스만 (문단 편집) == 예정된 파멸 == 지나친 세금에 고통받던 이슬람 제국은 우스만 이븐 아판의 치세 말기에 이미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차게 되었고, 특히 우스만을 우쭐거리게 만들었던 압둘라가 다스리는 이집트에서는 과도한 세금 부담에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집트인들은 유대교에서 개종한 압둘라 이븐 사바의 영향을 받아 우마이야 친족주의를 비판했다. 이집트의 시민들은 압둘라를 해임하고, 새로운 총독을 보내줄 것을 요구했지만 칼리파 우스만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전승에 따라서는 이집트인들의 행동을 칼리파의 직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불쾌해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어느 전승이 진실인가 보다도 우마이야 친족을 우대하던 우스만의 성향상 압둘라의 해임 요구는 들어줄 생각이 없었음을 예상할 수 있으며, 이 요구를 수락하는 것은 그의 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었기에 쉽사리 수락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압둘라의 압제를 견디다 못 한 이집트 시민들은 그들의 대표를 칼리파 우스만에게 보내 직접 청원하기로 했다. 그러자 당황한 우스만은 당시 이슬람 공동체에서 폭넓은 존경과 영향력을 행사하던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에게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부탁했으나, 이전부터 우스만의 행위를 좋게 보지 않은 알리는 우스만의 요청을 거부했다.[* 다만 이 행위가 차후 제4대 정통 칼리파가 된 알리의 발목을 잡게 되었다. 알리가 우스만의 요청을 거부한 것은 다 우스만의 암살을 위한 초석이라고 주장한 우마이야 가문과 무아위야 이븐 아비 수피얀이 알리 반대 운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우스만은 마지못해 이집트의 사절단을 만나게 되었다. 표면상 이 접견은 우스만이 탄원인들에게 이집트의 총독 교체를 약속하며 화기애애하게 이루어졌지만, 사실 자신의 권위가 도전받았다고 여겨 은연중에 불쾌해하던 우스만은 남몰래 이집트 총독 압둘라에게 지금 돌아가는 사절단을 모조리 처형할 것을 명령하는 서신을 보냈다.[* 혹은 우스만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의 우마이야 친족 중 한 명이 보냈다는 전승도 있다. 이 경우 이미 우스만은 실권을 잃었으며 그가 우대한 쿠라이시 부족, 특히 우마이야 가문이 이미 이슬람 세력을 자신들이 장악한 세속 제국으로 여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니 우스만 이후 쿠라이시 부족이 아닌 누가 칼리파에 선출되더라도 이슬람의 분열은 필연이었다.] 그러나 서신을 운반하던 노예는 귀향하던 이집트 사절단에게 붙잡혔고, 칼리파 우스만이 자신들을 속였음을 알고 난 이후 크게 격노했다. 분노한 이집트의 사절들은 폭도로 변해 우스만과 대치했으나, 우스만이 사정을 설명하며 혐의를 부인하자 다소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우스만에게 이집트 총독 압둘라에게 서신을 보낸 유력한 후보자인 마르완[* 칼리파 우스만의 친족이자, 당시 시리아 총독인 무아위야 이븐 아비 수피얀의 형제였다.]과의 대면을 요구했다. 그러나 친족을 아끼던 우스만은 마르완이 위험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집트 사절단과 마르완의 대면을 거부했고, 이에 분노한 사절들은 우스만은 더 이상 칼리파의 자질이 없다며 더 나은 사람(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에게 칼리파 직위를 넘길 것을 요구했다. 이에 우스만이 진노해 >“나의 의무는 신에 대한 것이니 폭도의 명령으로 자리에서 물러난다면 신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라는 거절의 의사를 밝히고서는 회담을 끝내버렸으나, 분노한 이집트 사절단에게 그런 말이 통용될 리도 없어 결국 폭도로 돌변한 그들의 손에 목숨을 잃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