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시오 (문단 편집) === 구축함 우시오 === 구축함의 경우 [[후부키급 구축함]] 20번함 또는 아야나미급 9번함으로 분류되는 함으로, [[1930년]] [[11월 17일]]에 진수되어 제7구축대에 편입되었다. [[무타구치 렌야]]의 [[삽질]]로 발생한 [[중일전쟁]], 그 중에서도 제일인 상하이 상륙작전에 참가한 경력이 있다. [[태평양 전쟁]]에서는 [[진주만 공습]]과 함께 진행된 작전인 미드웨이 섬 포격전을 [[사자나미]]와 함께 지원한 것이 첫 임무이며(25분간 포격전을 벌였다), 아야나미급 자매함들과 함께 항공모함의 호위를 맡거나 생존자 구조작전에 투입되었다. 그런데 이 함선의 일대기가 그야말로 [[행운]]의 연속, 그것도 자매함인 아케보노의 행운을 싸그리 빨아먹은 듯한 악운의 연속이여서 여러 가지로 비교가 되고 있다. * [[산호해 해전]] 당시 우시오는 항모 쇼카쿠의 호위를 맡을 예정이었지만,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 아케보노와 역할을 교대해 항모 즈이카쿠의 호위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갑작스런 소나기 덕에 즈이카쿠와 우시오는 미군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쇼카쿠는 미군의 집중 공격을 받아 대파당했다. 그리고 이 전투 이후 쇼카쿠 대파의 책임 추궁을 당한 아케보노는 후방으로 좌천당하고 말았다. * 세월이 흘러 좌천당한 아케보노가 전방으로 복귀한 것은 전쟁 말기인 레이테 만 해전. 이 전투에서 우시오는 경순양함 아부쿠마를 구원하는 역할을 담당했고, 아케보노는 중순양함 모가미를 구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여기서도 미군의 공습이 모가미가 있는 방향으로 집중된 탓에 결국 모가미는 회생불가능 판정을 받아 아케보노에 의해 자침되었지만, 대조적으로 우시오와 아부쿠마가 있는 방향으로는 거의 공격이 오지 않았다. * 이후 아케보노는 마닐라 만에서 미군의 공습을 받고 침몰하며 함생을 마감했는데 얄궂게도 이때 아케보노의 승조원들을 구조한 함선이 바로 우시오였다. 그리고 우시오는 일단 대파당하긴 했어도 요코스카항까지 귀환했으며, 몇 안되는 전후 생존 구축함이 되었다.[* 덤으로 진주만 공습함대의 유일한 생존함이기도 하다.(직접적인 공습대 멤버는 아니지만)] 하지만 대파 상태에서 추가적인 정비를 받지 않고 그대로 요코스카 항에 계류된 상태로 종전을 맞았다. 이상하게 그 이후의 기록은 찾기 어려운데, 대파된 상태여서 원양 항해가 어려웠는지 공작함으로 이용되지도 않고 배상함으로 넘겨지지도 않은 채 계속 방치되다 스크랩되었고, 스크랩된 시기도 명확하지 않다. 주위 정황을 따져봤을 때 1948년 경으로 추정. 엄밀하게 따지면 전후 생존함이라는 타이틀이 사실상 의미 없는 수준. 참고로 초계임무 도중 실수로 항구 근처에 폭뢰를 떨어뜨린 채 보고도 없이 방치했던 전과가 있는데, 나중에 이 폭뢰가 전함 무츠의 의문의 폭발화재사고의 원인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함대 컬렉션]]에 등장하는 [[칸무스]] 우시오는 [[우시오(함대 컬렉션)]] 항목 참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