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장춘 (문단 편집) == 기타 == 그의 업적이 대단함에도 불구하고 씨 없는 수박의 창시자라는 와전된 사실이 계속 전해지는 데다가, 그에 대한 내용은 고작 책 모퉁이에 짧게 나오는 수준. 오히려 [[일본]]에서 우장춘의 연대기를 더 열심히 공부하고 그에 대한 책을 내는 형편이다.[* 이는 위의 [[우장춘#s-1|개요]]의 마지막 단락에 일본어 위키에 좀 더 자세한 내용이 나와 있다며 링크를 달아놓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사실 우장춘의 모든 학문적 업적은 일본에서 쌓은 것이며, 한국에서 보낸 마지막 10년 동안은 새로운 학문적 업적 쌓기를 포기하고 한국의 농업 발전을 위한 실험과 육종 사업에만 치중했다. 일본에서 그가 굳이 한국인이라고 밝히지 않는 것도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일이다. 그가 남긴 [[유언]]은 한국농업과학연구소에서 가져온 [[벼]]를 손에 쥔 채로 말한 "이 벼! 끝을 보지 못하고 내가 죽어야 하다니..."였다. 당시 박사는 한 번 심어 두 번 거두는 [[이기작]]이 가능한 벼 품종을 개발하고 있었다. 원산지에선 충분히 가능하지만 최소한 당시 한국 기후에선 [[겨울]]의 존재로 인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며,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는 [[2010년대]]에 들어 [[전라남도]] 등지에서 이 방법이 시범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수원시]]에 있는 [[농촌진흥청]] 산하 연구소인 원예시험장 한 가운데에 흉상이 있다. 거기에 속한 여기산(麗岐山)에는 우 박사의 묘소가 있다.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부산)|온천동]]에 우장춘 박사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이 있다. 그 앞 길의 도로명도 [[우장춘로]]이다. 환국 후 근무지인 부산원예고등학교(현 [[부산전자공업고등학교]][* 이 당시 부산원예고등학교는 지금의 [[부산전자공업고등학교]]다. [[부산전자공고]]는 원래 농업 및 원예학교로 처음 시작하여 우 박사가 환국한 무렵에는 부산원예고였다. 원예고가 전자공고가 된 이유는 1970년 공업계 학과가 추가로 설치되고 1974년에 농업계 학과가 폐과되어 이때부터 공업계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자공고 근처에 있는 [[동래원예고등학교]]는 전자공고에서 폐과된 농업 교육 기능을 이어받고자 1974년 한독원예학교라는 이름으로 별도 출범한 것이다. 그래서 전자공고는 연혁에 부산원예고 시절을 포함하고 있어 이를 자교의 전신으로 삼고 있다. 즉 물리적, 정신적 뿌리는 전자공고에 있으나 기능적 뿌리는 동래원예고에 있는 셈이다.])를 기념하는 것이어서 그 동네에 우장춘 이름이 남은 것이다. 그의 넷째 [[사위]]는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3대 경영인 중 하나로 꼽히는 [[이나모리 가즈오]](1932~2022)이다. 이나모리는 전자기기, 세라믹 제품 등을 생산하는 대기업 [[교세라]]의 창업주이고, [[일본항공|일본항공(JAL)]]이 파산했을 당시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의 부탁으로 회장을 맡아 경영을 정상화시키는 등 전설적인 경영인으로 추앙받는다. 프로축구단 [[교토 상가 FC]]의 회장직도 역임했으며, 2003년 [[박지성]]이 팀을 창단 첫 우승으로 이끈 직후 유럽([[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하게 되자 남긴 "어딜 가든 응원하겠지만 언젠가 반드시 돌아와 달라. '''절름발이'''가 되어 돌아와도 받아주겠다."라는 말이 축구팬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다. 농학자 [[한상기]]가 우장춘을 멘토로 삼아 육종학 연구를 하기로 다짐했다고 한다. 1970년대에 나왔던 어린이용 세계 과학자 위인 전집에 우장춘이 들어가 있었다. 90년대 이전 당시의 어린이 도서, 세계 위인전은 대부분이 일본에서 나온 것을 중역하여 해적판으로 낸 것[* 그런 이유로 당시 국내 발행 세계 위인전인 '삼성당 소년소녀 위인전기전집'에는 일본의 장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나 일본 [[미쓰비시]] 재벌 창업자인[[ 이와사키 야타로]]가 들어간 일까지 있었다. 전범기업이 아닌 세계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한 기업의 설립자라도 일단 실업가라서 정치, 과학 등에서 세계적인 업적을 남긴이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위인전에 들어갈 리가 없던, 소위 '장사꾼이 웬 위인?' 하던 시절에, 덤으로 반일감정도 꽤 컸던 시절에 전범기업의 창업자가 위인전에 들어간 것은 이런 중역 해적판이라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정확히 [[쇼가쿠간]] 소년소녀위인전기라는 책을 카피한 책이였다.) 2020년대 위인전에 [[마오쩌둥]], [[호찌민]] 등이 들어간 것만큼 논란이 있었다.]이었는데, 크게 알려지지 않았고 한국 교과서에도 제대로 안 나온 우장춘은 일본 출신이어서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우범선]]에 대해서도 [[명성황후]] 시해의 주동자라는 얘기 없이 "망명 정객"이라고 간단하게 한 줄만 나온다. [[1993년]] 제작된 [[초롱이의 옛날여행]]이란 [[애니메이션]]에서 그의 일대기를 다루었다. 목소리 연기는 성우 [[설영범]]이 맡았으며 근현대의 인물이다 보니 [[고증]]은 매우 훌륭한 편. 다만, 주 [[시청자]]가 어린이들이다 보니 아버지가 조선인이고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다는 것까지만 언급하고 아버지 우범선이 [[을미사변]]의 주동자였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과학기술원]] 유성캠퍼스에 2016년 준공된 역대 과학자 흉상들 중 우장춘의 흉상을 볼 수 있다. [[네바다 대학교]] 임원철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etc&mra=bjky&x_csa=%7B%22fromUi%22%3A%22kb%22%7D&pkid=1&os=18588956&qvt=0&query=%EC%9E%84%EC%9B%90%EC%B2%A0%20%ED%94%84%EB%A1%9C%ED%95%84|#]] 교수가 2022년에 우장춘의 삼각형 중 마지막 [[유채]]인 이디오피아 유채의 [[유전체]] 지도를 완성 하였다. [* The Plant Cell 저널에 등록: The final piece of the Triangle of U: Evolution of the tetraploid Brassica carinata genome ] 이로써 우장춘의 삼각형 내에 있는 모든 유채의 [[유전체]] 지도가 완성 되었다.[[https://academic.oup.com/plcell/article/34/11/4143/6663994|#]] [[파일:유채2.jpg]]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