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체국 (문단 편집) == 대한민국에서의 역사 == ||[[파일:external/s32.postimg.org/IMG_20160511_173738.jpg|width=100%]]|| || [[조계사]] 옆에 있는 한국 최초의 우체국인 우정총국 || || [[파일:external/photos.wikimapia.org/89_big.jpg|width=100%]] || || 인천 항동6가에 있는 옛 인천중동우체국 청사[* 구 인천우체국(~2005). 한국 최초로 영업한 [[우체국]]이다. 건물은 [[1923년]]에 [[건축]]되었으며, [[인천광역시]] 지방문화재 8호. 정밀안전진단 결과 D등급을 받아 긴급보수가 필요한데다 [[문화재 훼손]]의 우려가 있어 [[2019년]] [[5월]] 청사를 옮겨, 현재 인천중동우체국은 신흥동 정석빌딩에서 운영하고 있다.] || [[대한민국]]에서는 [[1884년]] [[4월 22일]]에 세워진 [[우정총국]]을 통하여 [[우편]]의 역사를 시작하였으나, 당시에 [[기차]]나 [[자동차]]는 운용되지 않았기에 속도는 느렸다. 또한, [[1884년|그 해]] [[12월]] [[갑신정변]]의 여파로 순식간에 일이 엎어지게 된다.[* 우정총국 초대 총판이 [[홍영식]]인데, [[갑신정변]]이 터지고 며칠 후에 살해당했다.] 이후, 10여년이 넘게 근대 우편 제도가 중지되었다가, [[1895년]] [[갑오개혁]]이 되어서야 전국 서비스가 시작됐다. [[1900년]], [[만국우편연합]]에도 가입해 [[국제우편]] 서비스도 시작했다. 당시의 우체국의 명칭은 우체사였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1905년]]에 [[한일통신합동조약]]이 강제로 맺어져 [[대한제국]]의 체신 업무는 그대로 일본에 접수되고 말았다. 따라서 우정총국은 [[경성우편국]]으로 흡수되었으며, 건축물등에 관한 상세는 문서참조. 세월이 지나 해방 이후 일제가 남겨두고 간 시설로 다시 업무를 시작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정부의 공식 기관이 돼 오늘날 대한민국 우편 서비스의 모태가 된다. [[우체국]]은 [[우정사업본부]] 소속[*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하의 독립 직제로 개편되었다.]으로서 [[우체국]]을 관할하는 [[지방우정청]]은 전국에 9개([[서울지방우정청]], [[경인지방우정청]], [[부산지방우정청]], [[충청지방우정청]], [[전북지방우정청]], [[전남지방우정청]], [[경북지방우정청]], [[강원지방우정청]], [[제주지방우정청]])가 있다. 따라서, 상당수의 직원들은 [[국가공무원]]이다. 우정사업 자체가 전 국토를 커버해야 하는 업무이기 때문에 지방공무원이 담당할 수 없다.[* 다른 나라들도 대부분 비슷하며, 미국도 마찬가지로 우편 직원은 전원 연방정부 소속 공무원 신분이고, 연방헌법에 따라 연방정부는 우편에 대한 독점적인 관할권을 가지고 있다.] [[군사우체국]] 대량 폐지에 이어서 [[2014년]] [[7월]]에는 우편 이용률 감소로 인한 적자를 이유로 [[대학교]] 캠퍼스 내 우체국을 상당수 폐국하고[*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한양대]], [[건국대]], [[한국외국어대학교|한국외대]] 등 주요 대학교들은 아직 캠퍼스 내 정식 우체국이 영업 중이다. [[2020년]]까지 정량 지표와 관계 없이 '1읍·면·동 1국' 체제에 따라 대학 구내의 우체국을 전부 폐국할 계획이었지만, 무산된 듯.] 일부는 [[우편취급국]]으로 전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