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크라이나군 (문단 편집) === [[유로마이단 혁명]],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병합]] === [[야누코비치]] 정권이 노골적인 친러 정책을 계속하자, 2014년 2월말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인 [[유로마이단 혁명]]이 일어났다. 친러 정권은 군중들에게 발포하는 등 강경 진압했지만 결국 친러 야누코비치 정권이 붕괴되고 야누코비치는 러시아로 도주했다. 하지만 이때 2014년 2월 28일 러시아군이 군사 개입을 단행하여 결국 크림반도를 병합했다. 당시 우크라이나 해군 전력의 사실상 전부가 변변한 저항조차 하지 않고 러시아군에 그대로 투항해버리는 치욕적인 사태가 벌어졌다. 이로 인해 크림반도 내의 세바스토폴 해군본부 등 6개의 해군 기지가 통째로 러시아로 넘어갔으며, 우크라이나 해군이 보유한 대다수의 함정들이 러시아군으로 넘어갔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으로 우크라이나 해군은 대다수의 전력을 상실하는 치명적인 전력 손실을 입었고, 사실상 우크라이나 해군 조직 자체가 와해되었다. 이후 전투함으로는 3천 톤급 [[크리박급 호위함]] 헤트만 사하이다치니호 1척과 고속정 약 10척만 보유하며 명백만 간신히 유지하게 되었다. 당시 헤트만 사하이다치니 호는 소말리아 해적 소탕 작전에 파병 나가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에 나포당하거나 투항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헤트만 사하이다치니 호도 러시아에 투항하기 위해 소말리아에서 흑해로 돌아오고 있다는 소문이 외신에 보도될 정도였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사태는 그간 지속되어 온 군축으로 인해 우크라이나군이 얼마나 형편없이 약해졌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또 야누코비치 정권이 러시아와 군사 교류와 협력을 강화된 후 당시 친러파가 득세해 있던 우크라이나군, 그 중 특히 우크라이나 해군의 상황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세계 각국이 우크라이나군이 별다른 저항조차 하지 않고 러시아에 투항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에 빠졌고 러시아조차 우크라이나군이 이렇게 별다른 저항조차 하지 않고 쉽게 무너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크림반도 사태 직후에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에서는 친서방과 친러시아 주민들간에 폭동이 발발했고 곧이어 [[돈바스 전쟁]]이 발발했다. 그러나 심각할 정도로 약체화되었던 우크라이나군은 동부의 반군과 위장 개입한 [[러시아군]] [[대대전술단]]을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였다. 이로 인해 동부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에서는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가 자리잡았다. 하지만 역량이 부족했던 반군 또한 우크라이나군이 돈바스에 건설한 요새 지대를 돌파하지 못하면서 도네츠크, 루한스크 주 전체를 점령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때부터 돈바스 전쟁은 장기화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는 개전 초의 졸전을 반성하고 미국과 나토 회원국 등의 서방의 도움을 받아 지속적이고 철저한 군 개혁과 군사력 증강에 착수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