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욱일기 (문단 편집) ==== 욱일기는 [[전범기]]가 아니라는 의견 ==== * 전범기라는 개념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전범재판으로 기소된 건 사람이지 깃발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국가, 기업을 상대로 기소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전범국, 전범기업이란 개념도 전범재판과는 무관하다.[* 전범기업이라고 대한민국 정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탱크를 만들었다고 전범기업으로 분류할 정도로 기준이 불분명하다.] 물론 커티스 르메이가 "만약 전쟁에서 졌다면 나는 전범으로 기소되었을 게 뻔하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전범재판은 전범행위자가 승전국 출신인지 패전국 출신인지에 따라 기소 여부가 갈리긴 했다. 하지만 그것이 패전국이 곧 전범국이라는 의미는 되지 않는다. 오히려 커티스의 발언은 승전국이 전범 행위로 기소되지 않았다고 하여 전쟁범죄와 무관한 국가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발언에 가깝다. * 욱일기가 전범기라는 주장을 펴는 측에서는 줄곧 독일에서 [[하켄크로이츠]]가 금지되었고 이것이 국제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니 욱일기도 똑같이 대해야 한다는 논리를 천편일률적으로 펼치고 있는데, 이는 독일의 나치 청산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오해이다. [[하켄크로이츠]]는 어디까지나 본질적으로 나치당의 상징이며 이것이 나치당이 권력을 잡은 이후 당과 국가가 동일시되면서 정체성이 흐려진 케이스일 뿐, 본질은 어디까지나 정당의 상징이다. 2차 대전 패전 후 독일은 상당히 기술적으로 전후 청산을 시행했는데, 이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나치당에 대한 청산'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널리 알려진 예시를 들자면, [[슈츠슈타펠]]에 대한 전공은 완전히 부인하면서 독일 국방군의 전공은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미하일 비트만]] 등 SS의 전공은 '''국가적으로 SS는 군사 조직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에 따라 SS의 군공도 공식적으로 군공에서 삭제'''되었으며 [[오토 카리우스]]의 전공은 지금도 인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완전한 자기부정을 피하면서도 전쟁범죄에 대한 속죄를 확실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나치당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당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가 금지되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었다. 반면 [[독일 국방군]]의 상징이었던 [[철십자 훈장]]은 당시에나 지금에나 금지된 바가 전혀 없는 데다가 현재도 모양을 약간 변형해서 [[독일 연방군]]의 상징으로 계속 쓰고 있다. 그리고 다시 욱일기를 보면, 욱일기는 일본이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길로 가기 훨씬 이전부터 군기로서의 지위를 지니고 있었다. 즉 하켄크로이츠보다는 독일의 철십자와 동등한 지위라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다만 욱일기가 일본 제국주의의 대표적인 상징물이었던 것은 맞다. 만약 일본 제국에도 전쟁 이전부터 쓰인 욱일기가 아닌 다른 주력 전범 상징물이 있었고, 그것을 깔끔히 청산했다면 애초에 욱일기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정리하자면, "하켄크로이츠가 금지되었으니 욱일기도 금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하켄크로이츠와 욱일기의 기본적 성질을 구별하지 못한 주장인 것이다. * 독일 형법 제 86조, 제 86a조(독일어: Strafgesetzbuch section 86a)는 "독일 헌법에 위배되는 단체의 상징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여기에서 "독일 헌법에 위배되는 단체"는 특히 나치와 관련된 단체를 의미하고, "상징"은 이러한 단체의 깃발, 휘장, 뱃지, 유니폼, 구호, 경례 방식 등을 모두 포함한다. 독일 형법에서 "위헌조직"(독일어: verfassungswidriger Organisationen)은 독일의 [[연방헌법재판소]]에 의하여 위헌으로 선언된 정당 또는 그와 같은 정당의 대체조직임이 확정된 정당이나 단체이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에 대한 헌법재판 등 8가지의 권한을 담당하고 있는데 이 중 독일 기본법 제 21조 2항에 따라 정당은 그 목적이나 그 정당원의 행위가 [[독일|독일연방공화국]]의 존속을 위협하거나 [[방어적 민주주의|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거나 배제하는 것]]이면 위헌으로 결정될 수 있다. 따라서 이에 포함되는 것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뿐만이 아니라 [[독일 공산당|독일 공산당(KPD, 1919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동독]]에서는 소련에 의하여 사회민주당과 통합되면서 [[독일 사회주의통일당]](SED)을 창당했고, [[서독]]에서도 공산당을 재건하면서 1949년의 초대 총선 당시 15석을 차지하기도 하고 1950년대 콘라드 아데나워 정권의 재무장 정책에 대하여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했지만, 결국 1956년, [[방어적 민주주의]]를 내세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 의하여 해산당한다.]도 포함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하켄크로이츠 및 나치당의 상징을 금지하는 것은 전쟁 범죄의 책임을 묻는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뉘른베르크 재판]]과 같은 이유에서가 아닌 단순 독일 내에서 정해진 사회적, 법적 근거에 의거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전쟁범죄에 연루되었다는 상징이므로 전범기로서 금지해야한다는 논거 자체가 찬반의 논지가 될 수 없다. * 단순히 당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욱일기를 주된 상징으로 사용했다는 점만을 내세워 전범기라는 주장을 펼친다면, 똑같은 논리로 논리로 [[6.25 전쟁]] 전후로, [[반공]] [[민족주의]][* 1948년 [[여순 사건]]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정부에서는 학교와 정부기관에 모든 지도자 이하로 남녀아동까지라도 일일이 조사해서 불순분자는 다 제거하고 조직을 엄밀히 해서 반역적 사상이 만연되지 못하게" 해야한다는 담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http://www.pa.go.kr/online_contents/speech/speech02/presidentspeech_list.htm|#]] 이승만 대통령은 자기 입맛에 맞게 학살을 정당화했다. (김득중, 《빨갱이의 탄생》, p.215.) 1947~48년까지 한국의 미군 [[CIC]] 서울파견대 장교로 근무했던 케네스 맥더갈(Kenneth E. MacDougall) 중위는 "이승만은 [[파시스트]]다. 공산주의에 대한 그의 접근방식은 극단적이다. 그는 공산주의자는 모두 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인터뷰하면서 6.25 전쟁 전후 전시법령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사형은 오로지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에 따른 [[비국민]] 대상에 대한 [[전쟁범죄|잔혹한 살육]]도구라고 비판했다. [[http://mobile.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040710000028|#]]] 내지는 반공 [[기독교]][* 종종 [[기독교 우파|극우 기독교]] 목회자나 단체들은 [[유신론]] 대 [[유물론]], 예수 대 [[마르크스주의|맑스주의]]라는 사상적 십자군 전쟁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렇게 좌익과 용공주의자들을 [[묵시록의 적룡]] 등으로 비유하며^^(한경직, "기독교와 공산주의," 《건국과 기독교》, 212; 유재헌, "구국기도단선언문," 《부흥회, 전도회, 주일학교용 복음성가》67; 김인서, "서론", 《신앙생활》 10.)^^ 거짓된 사탄마귀로 몰아 학살의 신앙적·절대적 정당성을 부여했다.]를 기치로 최소 30만에서 최대 100만 명을 학살하고, [[https://m.khan.co.kr/view.html?art_id=202006130600015&utm_source=urlCopy&utm_medium=social_share|#]] [[한국군 위안부]]를 운영한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22981?no=122981#0DKU|#]] 대한민국[* 왕왕 6.25 전쟁기 군경의 양민학살을 일선의 착오나 단순한 개인의 일탈적 범죄로 [[역사왜곡|왜곡]]하는 서술도 있었지만, [[4.3 사건|제주 양민 학살]]을 비롯한 6.25 전후 군경에 의한 양민학살은 결코 지도자 개인의 폭주나 군인들의 일선의 착오 및 단순 일탈적 범죄가 아닌 일본의 패전으로 해방된 한반도가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됨에 따라 벌어진 새로운 국가건설을 대한 좌우 이념 대립의 결과물이다.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하려는 좌익세력과 자본주의 국가를 건설하려는 우익세력의 물리적 충돌이 대규모 양민학살을 초래한 것이다. 일부 [[반공주의]]자들의 [[이승만]] 예찬의 명분 중 하나가 남한에서 공산주의자 내지는 [[빨갱이]]로 부터 나라를 지켜 [[건국절|건국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6/03/26/2016032600029.html|#1]], [[https://www.lkp.news/mobile/article.html?no=9175|#2]], [[http://viewsnnews.com/article?q=122671|#3]] 진보 역사학자 [[한홍구]]는 "민간인 학살만을 놓고 본다면 이민족 지배하의 학살에 비해 동족 내의 '[[빨갱이]] 사냥'이 규모나 강도에서 훨씬 잔혹했다."고 비판했다. [[https://books.google.co.kr/books?id=p_Z8K32fQpkC&pg=PT165&lpg=PT165&dq=민간인+학살만을+놓고+본다면+이민족+지배하의+학살에+비해+동족+내의+%27빨갱이+사냥%27이+규모나+강도에서+훨씬+잔혹했다&source=bl&ots=Vqsdv5e2Kf&sig=ACfU3U0E_dj0imJxrGMw09c0TKkJJNKrnw&hl=en&sa=X&ved=2ahUKEwivqYbE743rAhWi-GEKHV0wB6oQ6AEwAXoECAoQAQ#v=onepage&q=|#]] [[진실화해위원회]]를 비롯한 역사학계나 민간단체들은 이 기간 동안의 희생자들을 많게는 1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http://naver.me/GZMKknN5|#]] 이런 과거사를 이승만 개인 내지는 군인들의 착오나 일탈적 범죄로 치부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없이 욱일기의 문제점만 부각하려는 저의에서 나온 명백한 역사왜곡이자, 전후 독일인들이 [[히틀러]]는 사실 지지율이 낮았다고 하는 것과 유사한 면피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제국주의 여부 같은 유치한 분별 없이 이 문제는 실로 대한민국 사회의 문제였으며,[* 4.3 학살에서 생존한 제주 양민들을 비롯하여 해방 전후 [[사회주의]], 공산주의 운동이 활발했던 [[강릉시]], [[대구광역시]] 등은 비국민이라는 사회적 편견, 탄압에서 벗어나고자 권위주의 정권을 적극적으로 충성, 지지하며 보수화 됐다.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663581|#]]] 이를 방임한 미국도 간접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게 적절하다.][* 애시당초 [[주식]]하듯이 희생자의 비율로 심각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황당무계한 일이다.][* 한국군이 [[파시즘]]이나 [[제국주의]] 등을 내세운 적도 없다는 논리로 한국을 비호하는 경우도 있으나 한국 해방기 및 권위주의 정권 시기에 파시즘은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고, 그 피해자가 자국민이든 외국인이든 사람을 대대적으로 죽여댔다는 점에서 제국주의와 반공주의가 개인과 국가라는 차이, 윤리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는 사상적, 실체적 논증이 없는 이상 성립되지 않는다. 한국군 위안부 문제도 한국군 당국이 진상조사가 부재하다면서도 구체적인 사료가 없다는 명분으로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https://www.google.com/amp/s/amp.seoul.co.kr/www/20200626025025|#]] 한국 내 인식과는 달리 일본 내 학계는 난징 대학살이 존재했다는 쪽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츠루 문과대학의 [[https://ko.wikipedia.org/wiki/%EA%B0%80%EC%82%AC%ED%95%98%EB%9D%BC_%EB%8F%84%EC%BF%A0%EC%8B%9C|가사하라도쿠시]], 와세다 대학의 호라 도미오 등의 역사학자들도 대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등, 대학살은 일본 내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일본에서 지배자 시선에서 역사를 미화하고 제국주의,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이 미비한 우편향 역사관으로 분류되는 교과서들의 채택률은 전국에서 6%에 불과하고, 후쇼샤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는 2007년 일선 학부모들의 극렬한 반대 등으로 채택되지 못하여 발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야스쿠니]] 문제 등을 거론하며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외면하기도 하지만, 참고로 서울과 대전의 [[현충원]]에는 양민 학살의 책임자들이 꽤나 묻혀 있다.]이나, 자국 병사가 포로로 잡힐 경우 당사자 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하는 메뉴얼[* 이스라엘은 2009년 가자지구의 UN 난민구제사업국(UNRWA) 학교를 비롯한 민간인 거주지역을 향해 155mm [[백린탄]]을, 2014년에도 플레셰트탄은 물론이고 백린탄을 사용했다는 의혹이 있다. [[https://kr.ajunews.com/view/20140717170628400|#1]] [[https://n.news.naver.com/article/081/0002445824|#2]] ], [[초국가주의|테러리즘과 폭력선동을 했다는 명분]] 등에 따라 각지의 팔레스타인인들을 공격하고 미성년들을 재판도 없이 자국의 수용소에 구금하는 [[https://www.ochaopt.org/content/light-covid-19-crisis-un-officials-call-immediate-release-all-children-detention-including|#]] [[이스라엘]] 그리고 [[러우전쟁]]을 일으키고 [[부차 학살]] 등을 일으킨 [[러시아 국기]], [[남아프리카]]에서 [[보어 전쟁|보어인들과의 전쟁에서 보어인들을 수용소에 넣고 학살한]] [[영국]]의 [[유니언 잭]], [[알제리 독립 전쟁|알제리인들의 독립 투쟁을 학살로 보복한]] 프랑스의 [[삼색기]] 그리고 거짓명분을 내세워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미국]]의 [[성조기]] 역시 몽땅 전범기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 국기인 [[다윗의 별]]은 미국이나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한국 [[https://t1.daumcdn.net/thumb/R720x0/?fname=http://t1.daumcdn.net/brunch/service/user/XoC/image/sDDJIR_mZULsHkr09q2dgfGimFo.png|#]], [[브라질]][[https://www.google.com/amp/s/www.hankyung.com/international/amp/202005112637Y|#]] 등지에서도 [[극우]]들이 흔드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즉, 색안경을 빼면 해당 상징들을 신봉하는 이들은 욱일기와 일장기를 같이 흔들며 [[헤이트 스피치]] 등을 외치는 일본의 극우주의자들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것이다. 결국 단순히 일본군의 상징이었고, 일본은 추축국이기 때문에 하켄크로이츠와 욱일기는 반드시 전범기로 분류되어야 한다거나 한국군경의 학살은 전범 재판을 통해 법적으로 전범이라 판결된 적이 없다는[* 애초에 하켄크로이츠는 아리안 우월주의와 [[반유대주의]] 등을 내세우며 [[홀로코스트]]를 일으킨 [[나치당]]과 [[나치독일]]의 상징이라서 문제시 된 것이지, 단순히 그들이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으로서, 다른 나라들을 점령했기 때문이 아니다.]는 논리는 반(反) 야만보다는 국제정치의 법리적 해석에 입각한 것임을 스스로 드러낸 꼴이라는 것이다. 이런 해석으로는 [[일본의 항복|일본을 패망시켜]] 항복 문서에 싸인을 받아낸 미국의 욱일기에 대한 태도를 설명할 수도, 고치려 들 수도 없으며 결국 역사를 단장취의하여 입맛에 맞게 해석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 욱일기가 전범기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모든 근거는 일장기에도 적용되는데, 현재 한국에서 일장기에 대해 전범기라고 비난하는 의견은 일절 없으며 어떻게 보더라도 일장기의 하위호환 급인 욱일기에만 맹렬한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객관적인 시선에서 보았을 때 모순이며 일장기를 제외하면서도 욱일기를 전범기라 주장하려면 욱일기에만 구체적으로 전쟁범죄를 절대적으로 지향하는 메시지가 들어있음을 증명해야 하는데 반대측에서는 증명하지 못한채 그저 " 과거에는 일장기도 반감이 높았는데 그게 지금은 욱일기로 집중되어 있을뿐" 이라는 이야기만 나오고 있다. 과거에는 일장기에도 반감이 높았다면 '''지금은 왜 그렇지 않고 욱일기에만 문제삼는지 그것부터 설명되어야 할 것'''이며 패전 이후 연합군 점령하의 일본에서는 일장기의 게양이 금지되었으며, 지금처럼 욱일기에만 쏠리지 않고 일장기 그 자체에 대한 문제인식이 더 심했다. 이는 대한민국도, [[1936 베를린 올림픽]] 당시 [[손기정]]이 일장기를 가린 것이나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사건]]을 보면 당연하지만, 한일국교 이전인 1960년에 일본 외무대신이 방한하여 호텔 걸린 일장기를 한 청년이 떼어내려고 한 사건,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090700329103010&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60-09-07&officeId=00032&pageNo=3&printNo=4460&publishType=00010|#]]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된 1965년 일본 대표단과 함께 일장기가 대놓고 들어오는 걸 보고 충격받은 국민들이 많았다는 기사[[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502180032920102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5-02-18&officeId=00032&pageNo=1&printNo=5949&publishType=00020|#]]를 통해 마찬가지였음을 알 수 있다.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 [[러시아]]사가 주전공이지만 한국근현대사 연구도 종종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욱일기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서 욱일기 사용은 좋지 않지만 그보다 더 문제는 일본이 쓰는 일장기라고 주장하며, "일본 국민은 천황제를 유지하면서 일장기를 사용하고 있다. 천황도, 일본 국민도 역사적 반성을 토대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비판하니까 사용하지 말자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https://www.google.com/amp/s/mobile.newsis.com/view_amp.html%3far_id=NISX20190924_0000778576|#]] 결국 2000년대 이래 한국 대중의 일장기와 욱일기 인식의 간극은[* 주로 이러한 비판에 대해 한국인들은 1990년대부터 공론화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을 거론하면서 그게 어느 시점이 됐든 간에 보편적으로 헤이트 심볼로 인식하고 사용을 비판하고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항변하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90년대에야 공론화될 수 있던 것은 현재 일본의 법적 책임 부재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전근대적인 차별에서 기인한 것으로, [[https://www.google.com/amp/s/m.khan.co.kr/amp/view.html%3fart_id=202006142109005&sec_id=940100|#]] 피해자들이 그때서야 목소리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전쟁 과정에서 벌인 만행들이나 피해의식은 그 시점에서 희석될지언정 꾸준히 유지된 것이기에 비교대상으로 적절치 않다.] [[일제강점기]]를 실제 경험한 한국인들의 자연스러운 역사적 반감보다는 특정 정치세력이 국민통합이라는 사명을[* 한국의 특정 정치세력이 [[민족주의]]라는 이념하에 대일 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건 당연하지만 항상 있어왔다. 일제강점기를 경험하지 않은 당시 신세대가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구세대보다 일본에 대한 극도의 적개심을 보인다는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6030700329205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6-03-07&officeId=00032&pageNo=5&printNo=6273&publishType=00020|1966년 이화여대 사범대학 연구회지에 투고한 학생들의 조사]], 1995년 민족의 자존심과 정기를 회복하기 위해 [[http://m.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18510.html#cb#csidx57184de5751759285b74aada5b76230|일제강점기의 오욕을 떨쳐낸다는 명분 하에 이루어진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2012년 이명박 대통령 천황 사과 요구]],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9/07/31/2019073100160.html|2020년 양정철 민주연구원 보고서 논란]] 등이 대표적이다.] 통해 창조한 [[https://en.m.wikipedia.org/wiki/Invented_tradition|만들어진 전통(Invented tradition)]]의 일종으로 보일 정도인데, 욱일기에 대한 반감이 2012년 전후에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도 일장기에 대한 반감은 이전과 큰 차이가 없어 유독 욱일기에 대해서만 증오심을 표출하기 때문이다. 가령 1998년과 2002년 각각 한국과 일본에서 개최된 관함식에서 일본 자위대가 욱일기를 게양했음에도, 양 측이 서로 경례한 것이 별다른 논란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2022년 일본 국제 관함식 욱일기 경례 논란|2022년에는 일본 국제 관함식에서 한국군이 욱일기를 게양한 일본 함정에 경례했다는 이유로 정국이 요동쳤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정권을 잡은 것은 일본군부이지만, 군부가 정권을 잡은 나라는 '일본'이고 패전한 나라도 '일본'이었으며, 당시 일본 기득권의 상당수는 패전 이후에도 기존의 지위를 이어나갔다는 점 그리고 극우 시위에서는 일장기와 욱일기를 모두 흔든다는 점에서 기형적 현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기 욱일기를 일본의 국기로 착각하는 것이나, [[더킹: 영원의 군주]]에서 [[http://storage3.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0/0506/1588751869634288.jpg|일본해군을 등장시키고 욱일기 대신 일장기를 걸어]] 전쟁을 일으켰던 해군을 대체역사물이라는 이유로 등장시키면서, 그들이 흔들었던 욱일기를 삭제하고 전쟁 당시 국기였던 일장기를 건다는 것은 드라마 제작자들이 의식하고 있는 한국 여론이 [[주객전도]]되어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며, 이는 기형적인 현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 독일 국기를 언급하며 일장기는 독일 국기처럼 비판의 대상이 아닌 것 마냥 말하기도 하나, 대부분의 한국 대중이 욱일기를 당시 국기로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나, 일본제국 때 국기가 일장기였다는 점을 보면 전형적인 [[순환 논증]]에 불과하다. 또한 군기라는 점을 인지하고 반감을 드러낸다고 해서 그것이 전범기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 나아가 상징물의 사회성 맥락에서 일본에서 사용되는 모든 욱일 문양 자체가 전범기 문양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 따져볼 필요도 있다. 욱일기 디자인을 채용한 아사히 신문[* 실제로 진보좌파인 테레비 아사히에서 한국의 욱일기 논란이 벌어지는 걸 보도할때마다 곤혹스러워 한다. 아사히 신문과 테레비 아사히는 일본에서 앞장서서 한국의 편을 들어주는 매체인데 자신들의 회사 상징인 욱일 문양에 대한 비판과 데모에 대해 '그저 햇살이 뻗어나가는 건데..' 라면 매우 곤혹스러워 하곤 한다.]의 로고나 풍어기 등은 어디까지나 디자인일 뿐, 이들을 전범기라 지칭하며 곧바로 군국주의나 제국주의로 귀결시키는 것은 부적절하다. 한국에서 논란이 되는 자위대기 역시 상징물로써의 의미만 있을 뿐, 자위대가 표면적으로 2차대전 당시 전범 행위들을 옹호하거나 현재 군국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불교의 만자가 하켄크로이츠와 닮았음에도 불교가 나치즘을 내세우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한국의 지도나 표지판에서 사찰을 뜻하는 만자가 하켄크로이츠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석탑 모양으로 변경되고 있을 때 국내에서는 유난떤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과거 조상과의 심리적 연결고리가 희박한 대부분의 현대의 일본인들은 극우 시위에서 흔드는 일장기나 욱일기의 의미를 제외하면 이 깃발들을 전통문양 내지는 디자인 정도로 보고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인지하지 않는다. 친한파 만화가로 유명한 [[히가시무라 아키코]]가 욱일기를 팬아트에 삽입했다가 사과하거나 [[https://n.news.naver.com/entertain/article/396/0000493243|#]]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패션 스쿨 '런던 칼리지 오브 패션'이 '빈앤드오미'의 욱일기 문양 의상을 입은 패션쇼 사진을 기재했다가 항의를 받고 "우발적 행위(inadvertent offence)"에 대해 사과하는 것 [[http://naver.me/FviIIWZt|#]] 그리고 2010년대 들어서 [[귀멸의 칼날]] 애니메이션처럼 해외로 수출되는 일본 창작물에 욱일기나 욱일기를 연상케 하는 디자인을 [[귀멸의 칼날(애니메이션 1기)#s-11|지우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국 사회의 반감을 감안한 것이지, 당사자들이 헤이트 심볼로서 욱일 문양을 사용했기 때문은 아니다. 욱일기에 대한 한국의 사회적 합의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두고 욱일기가 절대적으로 전범기이며, 일본인들의 인식을 역사 의식의 부재로 평가하는 것은 비약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