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울산왜성 (문단 편집) == 위치 및 구조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ksilbo.co.kr/309802_89891_5645.jpg|width=100%]]}}}|| || 현재의 모습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pds18.egloos.com/a0105007_4d266c6858754.jpg|width=100%]]}}} || || KBS에서 방영한 역사스페셜에서 나온 임진왜란 당시 울산왜성을 상상한 CG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울산왜성 지도.jpg|width=10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p1065579535176843_421_thum.jpg|width=100%]]}}} || || 울산왜성의 지형[* 밑에 있는 사진은 [[학성공원]] 내에 있는 울산왜성의 지형을 재현한 모습이다.] || 위치는 다음과 같다. '''[[울산광역시]] [[중구(울산광역시)|중구]] [[학성동(울산)|학성동]] 73''' '''[[울산광역시]] [[중구(울산광역시)|중구]] [[학성동(울산)|학성동]] 100''' 1597년 정유재란 때 [[가토 기요마사]]가 축성하였다. 지금은 약간 떨어져 있지만 원래는 [[태화강]]물이 바로 성 옆까지 들어차 배로 보급이 가능했기에 일본 본토와 통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지금 남아있는 부분 말고도 흙과 목책, 해자로 이중삼중의 방어를 폈지만 이미 도시화로 진작에 사라졌다. 일본군이 물러난 뒤에도 조선 수군이 한동안 썼다. 원래 [[대한민국의 사적]] 제9호였지만 당시 우리 문화재도 아닌 [[왜놈]]들이 남긴 왜성 따위를 왜 문화재로 보존하냐는 여론이 높았고, 결국 [[1997년]] 국가사적에서는 해지시키고 울산시 지방문화재자료로 재지정(사실상 강등) 되었다. 이전까지는 [[서생포왜성]]이 [[일본군]] 주둔지 거점으로서는 최동단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북동쪽으로 약 35km 정도 떨어진 울산에 성을 쌓아 [[일본군]] 최전방으로써 기능했다. 도시 한가운데에 있어 같은 울산에 있는 [[서생포왜성]]에 비하면 보존상태는 조금 떨어지지만 공원으로 잘 조성했으며 혼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 일본식 누각터 등 일본식 성의 원형은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단 흔히 일본 성의 상징처럼 생각하는 천수각은 원래 없었다. 한편 외곽부의 바깥 3군데에는 데지로(出城)을 두었는데, 동쪽 데지로(반구정 보루)는 동천과 약사천(藥泗川)이 만나는 해발 20m의 작은 구릉 위[* 現 반구동 한라그랜드아파트]에, 북쪽 데지로(성황당 보루)는 학성산(현재의 충의사가 위치한 산)에, 서쪽 데지로(태화강 보루)는 태화루 옛터(현재의 태화루)에 위치했다. 데지로는 본성과는 다르게 석축을 쌓지 않고 목책으로 구성한 간략한 형식을 취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