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웅진도독부 (문단 편집) == 역사 == 660년, [[신라]]와 함께 백제를 멸망시킨 후 당은 종전까지 5부(部) 37군(郡) 200성(城) 76만 호(戶)로 구성되어 있던 백제 땅을 다스리고자 웅진(熊津)·마한(馬韓)·동명(東明)·금련(金漣)·덕안(德安) 5개의 도독부를 세웠으며[* 비슷하게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에는 [[안동도호부]]를 설치했고, 신라 땅에는 [[계림대도독부]]를 두었다. 단 고구려, 백제와 달리 신라는 멸망한 적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 계림대도독부가 당시의 신라 영토(한반도 중부지방과 영남)를 지배하지는 않았고, 당나라가 그냥 명목상 지정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발해에도 명목상으로 [[홀한도독부]]가 설치되었다.], 그중에서도 옛 백제의 수도권이었던 [[웅진]], 즉 지금의 [[공주]] 지방에 세워진 웅진도독부가 5도독부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5도독부는 마치 현대 [[대한민국]]이 지정한 [[이북 5도]]처럼 명목상 설치한 것이었고, 실질적으로 당나라가 통치하는 것은 옛 백제 영토 중에서도 웅진, 사비의 도독부뿐이었다. 나머지 백제의 각 지방, 예를 들어 덕안(德安, 충남 [[논산시]] 일대로 비정) 등 여러 지역은 한국과 일본의 사료를 종합해 볼 때 백제 부흥군 잔존 세력이 지배하다가 일찍이 신라가 차지하고 있어 웅진도독부의 실제 통치력이 닿지 못하고 있다. 이후 행정 구역 개편을 통하여 5도독부는 해체되고, 안동도호부 치하 웅진도독부가 백제를 통치하는 형태로 격하·재편되어 그 밑에 7주와 52현을 두었다.[* 웅진도호부 1개의 체제가 성립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다. 물론 사비성에 도호부(학계에서는 사비성을 가리켜 백제부성(百濟府城)이라 표현한 기록을 바탕으로 편의상 백제도호부로 부르는 편)가 설치되고 예하 5도독부(웅진, 동명, 마한, 금련, 덕안)가 있던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워낙 기록이 적고 단편적이라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