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균 (문단 편집) ==== 북방에서의 활약 ==== 1575년(선조 9년) 잠시 거제현령으로 부임 했고[* 실록은 아니나, 거제읍지(巨濟邑誌)에 따르면 거제 현령으로 부임하기 직전 시기 방답진첨사(防踏鎭僉使)로 재직하게 되는데 어떤 이유에서 인지 정3품이 아닌 낮은 직으로 임명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에도 벼슬의 등급이 낮아지고 다른 곳으로 보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http://www.newsngeoje.com/news/articlePrint.html?idxno=11658|참고 자료]].] 이후 조산보만호로 재직하게 된다. 이 시기 여진족 토벌에 참여해 [[부령]]부사(富寧府使)로 진급[* 하버드-옌징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융경원년정묘식년문무과방목(隆慶元年丁卯式年文武科榜目)』가 출처.]했고 이후 종성부사(鐘城府使)[* 시전부락 전투에 당시 종성 도호 부사(약칭 종성 부사·종3품)였던 원균이 '우위, 1계원장(一繼援將)'으로 참전했다고 나온다.]에 임명되어 49세 때인 1588년(선조 21) 북병사 이일(李鎰)의 휘하에서 [[녹둔도 전투|시전부락(時錢部落) 정벌]]에 참가하였다. 이를 근거로 [[김탁환]]의 소설 [[불멸]]이나 불멸을 원작으로 한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북방에서 여진족 토벌에 활약했다고 설정되어 있지만[* 불멸의 경우에는 [[원균맹장론]]을 인용한 소설이고 당연히 그를 원작으로 한 불멸의 이순신 또한 원균맹장론을 어느정도 차용했다.], 선조시대는 워낙 기록 유실이 심해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며 남아있는 기록들을 보더라도 참가는 했는데 어떤 공을 세웠는지에 대한 내용들이 기술되어 있지 않거나 두리뭉술하게 묘사된 경우가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