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나라 (문단 편집) == 역사 == 1259년 [[몽골 제국]]의 제4대 대칸인 헌종 [[몽케 칸|몽케]]가 붕어하고 그의 동생들인 [[쿠빌라이]]와 [[아리크부카]]가 다음 대칸위를 두고 '''툴루이 내전'''을 벌였다. 1260년 [[쿠빌라이]]가 스스로 대칸을 칭했고, 1264년 [[아리크부카]]의 항복을 받아내면서 정식으로 몽골 제국의 제5대 대칸으로 즉위했다. 하지만 이 대규모 내전의 여파로 몽골 제국은 [[일 칸국]], [[우구데이 칸국]][* 우구데이 칸국은 사실상 [[카이두]] 개인의 영지에 가까워 칸국으로 쳐주지 않는 견해도 있다], [[차가타이 칸국]], [[킵차크 칸국]]과 같은 4칸국, 그리고 쿠빌라이의 [[원나라]]로 분열되어 버렸다.[* 물론 원나라의 영향력이 명목상으로나마 몽골 제국 영토 전체에 미치기는 했다.] 쿠빌라이 칸은 1271년 국호를 '''대원'''(大元)으로 교체하고 원나라 초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1267년부터 [[남송]]을 공격하기 시작하여 1276년 수도 임안을 함락시켰고 1279년에 벌어진 [[애산 전투]]에서 남송의 잔당을 정리하면서 중원을 완전히 정복했다. [[쿠빌라이 칸]]은 차남 [[칭김]]을 황태자로 임명했으나 칭김이 사망하면서 그의 3남인 테무르를 황태손으로 세웠고 1294년 쿠빌라이 칸의 뒤를 이어 테무르가 원나라 제2대 황제인 [[성종(원)|성종]]으로 즉위했다. 성종은 아들 테이슈를 황태자로 임명했지만 테이슈가 요절해버리고 1년 뒤인 1307년 성종도 붕어하면서 이후 원나라는 25년 동안 9명의 황제가 연달아 즉위하는 혼란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성종이 죽자 그의 황후였던 불루간이 성종의 사촌동생이었던 안서왕 아난다를 다음 후계자로 지목했으나 이에 불만을 가진 세력들이 지방에 가있었던 성종의 조카들인 [[카이산]]과 그의 동생 [[아유르바르와다]]에게 거사를 일으킬 것을 부추겼고, 수도 대도에 먼저 도착한 아유르바르와다가 블루간과 안서왕을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황족들 대부분이 카이산을 지지했고, 그의 군사력도 막강했기에 결국 아유르바르와다가 형인 카이산에게 제위를 양보하여 1307년 카이산이 원나라 제3대 황제인 [[무종(원)|무종]]으로 즉위했다. 무종은 동생 아유르바르와다를 황태제로 책봉하고, 자신이 붕어하면 제위를 물려주기로 약속했다. 4년 뒤 무종이 붕어하자 1311년 아유르바르와다가 원나라 제4대 황제인 [[인종(원)|인종]]으로 즉위했다. 인종은 제위를 이어받는 조건으로 자신이 죽으면 제위는 형 무종의 아들이 잇기로 약조했으나 마음이 바뀌었다. 인종은 모후인 흥성태후 옹기라트 다기와 결탁하여 무종의 장남인 쿠살라와 차남 투그테무르를 추방하고, 자신의 아들이었던 시다발라를 황태자로 책봉했다. 1320년 인종이 붕어하고, 시다발라가 원나라 제5대 황제인 [[영종(원, 5대)|영종]](英宗)으로 즉위했다. 영종은 선제인 인종때부터 전횡을 일삼던 할머니 흥성태후와 그녀의 세력들을 숙청하고, 한화정책 추진으로 황권 강화에 힘썼으나('''영종신정''') 이에 대한 반발에 부딪혀 1323년 시해당하고 말았다.('''[[남파의 변]]''') 영종이 시해당하자 흥성태후의 일파 중 한 명이었던 테시가 세조 쿠빌라이 칸의 증손자이며, 황태자 칭김의 장남 카말라의 아들이었던 이순테무르를 다음 황제로 추대하니 그가 원나라 제6대 황제인 [[진종(원)|진종]]이었다. 1328년 진종이 갑작스럽게 붕어하자 장남인 라기바흐가 8세의 나이로 원나라 제7대 황제인 [[천순제(원)|천순제]]가 되었는데 이를 두고 원 조정은 천순제를 지지하는 상도파와 제위를 무종(제3대)의 후손이 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킵차크 [[엘테무르]]를 주축으로 한 대도파로 나뉘게 되었다. 대도파는 무종의 차남인 투그테무르를 황제로 추대하니, 그가 1328년에 원나라 제8대 황제인 [[문종(원)|문종]]이 되었다. 상도파와 대도파 양대 세력은 전면전('''양도전쟁''')을 벌여 상도가 점령되었고, 천순제가 실종됨으로써 문종의 대도파가 승리하게 되었으나 문종의 형인 쿠살라가 군대를 이끌고 오자 위기감을 느낀 문종이 쿠살라에게 제위를 양보하여 1329년 쿠살라가 원나라 제9대 황제인 [[명종(원)|명종]]으로 즉위했다. 명종은 부황인 무종처럼 자신이 죽으면 동생에게 제위를 물려준다고 약조했으며, 6개월 뒤 붕어하자('''천력의 변''') 문종이 복위하게 되었다. 1332년 문종이 붕어하면서 형인 명종의 아들로 하여금 대를 이으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엘테무르는 이를 무시하고 문종의 아들을 다음 황제로 지목하려고 했다. 하지만 황후의 반발로 결국 명종의 차남인 6세의 린친발이 원나라 제10대 황제인 [[영종(원, 10대)|영종]](寧宗)으로 즉위했다. 하지만 영종이 2개월만에 붕어하면서 고려의 대청도로 유배를 가있었던 명종의 장남 토곤테무르가 1333년 원나라 제11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인 [[혜종(원)|혜종]]으로 즉위했다. 혜종이 즉위하면서 황제가 연달아 교체되는 혼란기는 종식되었으나 이미 원나라는 권신들간의 권력 다툼, [[홍건적]]과 같은 한족들의 대규모 반란, 흑사병의 창궐 등으로 점점 쇠락하고 있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Red_Turban-1.png|width=100%]]}}} || || {{{#000000 원말명초 세력도[* 위키피디아에서도 널리 사용하는 원말명초의 세력도이지만, '''정확한 지도는 아니다.''' 코케 테무르를 하나의 독립된 세력으로 보려면 원나라가 멸망한 1271년 이후로 보아야 맞으며, 명옥진에 대항해 1382년까지 항쟁한 몽골운남왕(양왕) 바자르오르미는 그려넣지 않았다. 보통 서송으로 부르는 서수휘의 나라는 오기(誤記)인 천완으로 적혀 있으며, 대만 섬은 뜬금 없게도 류큐 왕국의 영역으로(대만 섬을 유구국으로 기록한 사료들도 있다고는 하지만...), [[남북조시대(일본)]] 초기 이미 크게 패해 쪼그라들었던 요시노 조정은 규슈 일대를 장악한 것으로 묘사하는 등... 따라서, 14세기 중-말엽 중국의 대략적인 판도를 확인하는 용도로만 참고하는 게 좋다.] }}} || 결국 1351년 [[홍건적의 난]]이 일어났고, 홍건적 중에서 두각을 나타낸 [[홍무제|주원장]]이 1368년 [[명나라]]의 건국을 선언했다. 주원장은 명나라 건국 직후 대규모 북벌를 단행하여 원의 수도 대도를 함락시켰고, 혜종은 북쪽의 몽골 고원으로 달아나면서 [[북원]]을 건립했다. 북원은 중원을 되찾기 위해 명군과의 전쟁을 끊임없이 벌였지만 큰 성과는 없었고, 북원의 제3대 황제인 천원제로부터 제위를 찬탈한 [[조리그투 칸]]이 원나라의 황제위를 버리고 몽골 대칸의 지위만 잇기로 하면서 1388년 원나라는 완전히 멸망해버리고 말았다.[* 다만 [[다얀 칸]]과 [[알탄 칸]] 등 꾸준히 명나라를 압박하며 원나라의 부활을 노린 것은 물론, 원나라의 칭호를 부활시키려고 시도한 칸들도 더러 있어 [[청나라]]에게 내몽골이 정복당한 1635년을 멸망으로 보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