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미경 (문단 편집) === 스캔들 이후의 침체기 === 그러나 [[1982년]] [[꽃길]]만 걷던 원미경에게 [[스캔들]]이 터지며 방송생활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앞에서 서술한 대로 원미경이 방송생활을 하던 시절 빚에 쪼들린 가정생활 때문에 본의 아니게 [[소녀가장]]이 되었으며, 이런 사정 때문에 한 기자와 연애를 하게 된다. 원미경의 아버지는 이 사정을 알자 기자와 헤어지라고 종용하였으며, 이에 원미경과 헤어진 기자가 1982년 4월 '''원미경의 사생활을 까발리며''' 자기와 연인 사이었다고 폭로한다. 그리하여 KBS 주말극 <순애>에서 도중하차[* 다른 역도 아니고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인기드라마를 끝낼 수 없던 방송사의 결단으로 '''주인공은 그대로 두고 배우만 바꾸는''' 전대미문의 조치가 취해진다. 이때 대타로 나온 배우가 당시로서는 신인인 [[박준금]]이었다. 참고로 박준금도 원미경과 같은 춘천시 출신이지만 2살차이이다.]했다. 이후 동년 11월 MBC 드라마 <황진이>에 출연하며 재기의 불씨를 살리려 했지만, 당시 KBS 전속 배우였던 원미경이었기에 KBS에만 출연하기를 바랐던 KBS의 입장 때문에 MBC와 마찰이 있었으며 다시 1개월 만에 도중하차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출연마저도 실상은 조연이었는데, 당시 출연했던 드라마의 주연은 2인자였던 이미숙이었다. 배역부터 상당히 굴욕적이었던 셈. 결국 이 드라마를 계기로 이미숙은 2인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원미경의 라이벌이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84년]] 연예기자[* 당시에 [[이상벽]]이 많이 지목되었다. 이상벽 본인은 당연히 부정.]와의 동거설이 터지면서 피어리스 전속 광고 모델 계약마저도 파기되었다.[* 그 뒤 [[강문영]]으로 교체되었다.] 이런 일이 줄줄이 터지면서 '''[[출연금지 연예인]]''' 목록에까지 오르게 된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에는 영화 출연이 상당히 많았다. 이런 침체기 속에서도 꾸준히 영화에서는 흥행을 하였는데, 1982년에는 <반노>, 1983년에는 <인간시장-작은 악마 스물두살의 자서전>, 1984년에는 <뜸부기 새벽에 날다>로 건재함을 과시하였다.[* 아주 초대박까지는 아니었고 원미경이 죽지 않았다 수준의 중박 정도로 흥했다. 그녀의 라이벌인 [[이미숙(1960)|이미숙]]이 동시대에 [[고래사냥]],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로 대박을 터뜨린 것과 비교된다.] 작품성에서는 칸 수상제까지 올라간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가 유명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