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법승 (문단 편집) === 북위의 비정통 황제 === 524년부터 북위는 대란에 휩싸였다. 제7대 고조 [[효문제]] 시기에 실시된 한화정책에 대한 북위 내부의 불만과 권력투쟁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까지 발생하여, 북위는 [[육진의 난]]이라는 대혼란기에 빠져들었다. 보통(普通) 6년(525) 2월 22일, 원법승은 행대(行臺) 고량(高諒)을 살해하고 연호를 천계(天啓)로 개원한 뒤 자신의 아들들을 각지의 제왕(諸王)으로 봉했다. 본래 원법승은 권신 원차(元叉)를 섬기며 서주자사(徐州刺史)의 지위를 유지했는데 원차가 교만방자한 것을 보고 훗날 자신에게도 재앙이 미칠 것을 두려워했다. 조정에서는 중서사인(中書舍人) 장문백(張文伯)을 파견해 치소인 팽성(彭城)에 이르도록 했다. 이미 반역을 결심한 원법승은 장문백에게 자신과 함께 하기를 권했다. 그러나 장문백은 >'''"내가 죽어서 문릉(文陵)에 있는 송백(松柏)을 볼지언정 충의를 저버리고 반역을 할 수 없다."''' 고 답했다. 이에 분노한 원법승은 그 자리에서 장문백을 죽였고, 이로써 원법승은 북위 조정에 대하여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조정에서 군사를 인솔하여 원법승을 토벌하자 그는 제대로된 싸움도 못해보고 아들 원경중(元景仲)을 파견해 양나라에 투항했다. 안동장사(安東長史) 원현화(元顯和)는 역적 원법승을 토벌하라는 칙령을 받았는데 싸우던 중 원법승에게 사로잡혔다. 원법승은 뜻을 같이 하자며 그를 설득했으나 원현화는 두려움의 기색도 보이지 않고 원법승에게 >'''"경과 나는 모두 같은 황제의 가문에서 나왔는데 사서에 반역자로 기록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냐."''' 며 그의 제안에 거절했다. 원법승이 그를 위로하자 원현화는 원법승에게 소리쳤다. > '''"내 차라리 죽어 충성스러운 귀신이 될 언정, 살아서 반역을 하는 신하는 될 수 없소이다!"''' >---- > 我寧死爲忠鬼,不能生爲叛臣! 이에 원법승은 그의 목을 베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