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삼 (문단 편집) == 착용 제도 == 원삼은 착용하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직물과 색깔, 무늬, 부속품 등이 모두 다르다. 본래 《가례도감의궤》에 의하면, 왕비의 원삼은 없고 세자빈과 세손빈의 녹원삼, 왕자의 부인과 공주 등이 입는 녹원삼이 있었다. 그러나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황후]]는 황원삼, [[왕비]]는 홍원삼, [[비빈]]은 자적원삼, [[공주]]·[[옹주]]·민간의 부녀자는 초록원삼을 입어서 구별을 두게 된다. 또한, 조선 말부터 [[노의]]와 장삼 등의 다양한 여성 예복이 원삼으로 일원화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원삼에는 [[흉배]]를 달았는데 1681년(숙종 7) 《숙종인현후가례도감의궤》에는 왕비가 봉황 흉배를 달았다고 나왔고, [[영조]] 때의 《국조속오례의서례》에는 왕비는 오조룡을, 왕세자빈은 사조룡을 달았다고 나온다. 초록원삼은 공주와 옹주는 직금 또는 부금으로 만들었고, 민간에서 사용할 때는 금박 장식이 없이 소박하였다. 이 밖에 아청색[* 아청색은 검은 빛을 띄는 파란색이다. ]이나 남색의 원삼도 있었다. 한편, 《[[정미가례시일기]]》에 따르면, 1847년(헌종 13) [[헌종(조선)|헌종]]의 후궁인 [[경빈 김씨]]는 가례 절차 중 삼간택 때 '초록 금수복자 원삼'을 입었고, 수(壽) 흉배를 사용한 것으로 나온다.[* 수(壽) 흉배는 [[사극]]에서도 고증된 적이 없어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목판과 종이본으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gogung.go.kr/searchView.do?pageIndex=7&cultureSeq=36LJE&searchRelicDiv4=&searchGubun=ALL1&searchText=흉배|#]] ] 책빈례(冊嬪禮)[* 빈(嬪)으로 책봉하는 의식. ]와 조현례(朝見禮)[* 가례를 마치고 [[대왕대비]] 등 왕실 어른들에게 인사하는 의식. ]때는 '초록 직금 원삼'을 착용하였는데, 이듬해 1848년(헌종 14) 《무신년진찬의궤》에서는 '자적 인화문사 직금 원삼' 을 착용한 것으로 나온다. 이를 통해서 초록 원삼보다 자적 원삼이 더 격이 높게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경빈 김씨는 [[간택]] 후궁으로 일반적인 후궁과는 격이 달랐으며, 무신년 진찬에서도 거의 왕비에 준하는 예우를 받았다.] 일반적으로 원삼을 착용할 때는 머리에 어염족두리에 어여머리를 하여 [[가체]]를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예복으로 입을 때는 어여머리를 하며, 명복(命服)으로 입을 때는 대수(大首) 머리를 하고 후수와 대대,하피, 품대, 패옥,폐슬을 착용하고 홀을 든다. 그런데 원삼은 단순히 예복으로만 존재하지 않았다. 김장생이 쓴 《사계전서》의 〈상례비요〉편을 보면, "부인은 대수(大袖)를 쓰는데, 대수는 곧 원삼(圓衫)이며, 세속에서는 더러 장옷도 쓴다"고 하였으니 부인이 사망하여 장례를 치를 때는 수의로 원삼을 입히기도 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