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삼국시대 (문단 편집) == 연구 동향 == 원래 마한 권역에서는 유적이 잘 확인되지 않아 고고학적 연구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80년대 후반, 천안 청당동에서 확인된 마한의 무덤을 발견한 것을 시작으로 2000년대 중후반부터 다양한 유적이 확인되면서 연구가 촉발되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 [[마한]] 권역에서 낙랑과 관련한 여러 유물이 많이 발견되면서 낙랑과의 교류라거나 낙랑 유물의 유통 생산 또는 재지화 등의 재밌는 성과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원삼국시대의 마한 관련 유적은 주로 중부 지방 즉 서울•경기 일대를 중심으로 확인되고 이 외의 지역에서는 잘 확인되지 않는 데다, 기원전 1세기 ~ 기원후 2세기에 해당하는 유적은 거의 발견되지 않아 '마한 고고학의 암흑기'라고도 불린다. 주로 3세기 중•후엽 이후의 유적이 많이 확인되는데, 이때는 마한이 백제의 직접 지배 영역으로 편재되기 시작하던 때라 백제 유물과 마한 유물이 혼재되어 나타나, 이것이 마한 시대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백제의 영역화 이후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세밀한 편년 작업을 통해 이 유구가 마한 시대 것인지 백제 영역이 된 이후 유구인지 구별하는 작업과 함께 취락(마을)을 중심으로 한 해당 지역의 정치체의 성격과 같은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진한과 변한은 과거부터 많은 유물 / 유적이 확인되었다. 특히 1970년대 후반, 경주 조양동 유적의 발굴로 영남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토기(와질 토기)가 확인되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특히 이러한 발굴 성과에 힘입어 1980년대 초의 와질 토기 논쟁의 시작은 1980년대 ~ 1990년대에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엄청난 연구 성과가 쏟아졌다. 이후 2000년대 초에 들어서면서 대구 팔달동 유적의 발굴, 경산 임당 유적 발굴 등 다양한 고고학적 발굴이 이루어지면서 꾸준한 연구 성과가 나오고 있다. 다만 2000년대 초반 이후 기존 학설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자료가 확인된 것은 아니라서 괄목할 만한 동향은 없는 듯하다. 동예 지역도 마한과 마찬가지로 낙랑 유물이 많이 확인되어 이와 관련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 이 지역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呂(여)자형 凸(철)자형 주거지가 많이 발굴되어 주로 집자리 중심의 연구가 대세를 이룬다. 특히 이 주거지는 경기도 지역의 백제와 같은 마한 소국들도 사용하는 주거형태이다. 옥저는 크로우노프카 문화와 연관있는 것이 확인되면서 이와 관련하여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연구 성과가 많이 미비한 데다, 크로우노프카 문화 전체가 옥저라는 정치체 속에 포함시켜 볼 수 있는지도 논란이 된다. 또 옥저 자체의 연구보다 크로우노프카 문화의 토기와 주거 구조가 한반도 남부 지방과 유사하다고 확인되어 이와 관련한 연구가 많이 집중되었다. 따라서 앞으로 옥저라는 정치체가 주체가 된 고고학적 연구 성과가 많이 나올 필요가 있다. 고구려는 2000년도 이후 동북공정과 함께 연구가 촉진되었다. 특히나 동북공정을 즈음하여 중국에서 적석총에 대한 많은 발굴과 보고서가 발간되면서 그 동안 부족했던 고고학 자료가 많이 축적되었다. 또 중국 내에서도 자체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면서 앞으로 원삼국시대의 고구려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도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