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소(삼국지) (문단 편집) === 외모와 쇼맨쉽 === 삼국지와 후한서에 남겨진 원소열전 첫머리부터 언급되듯 대단한 미남이었다고 하며, 신분과 교육수준, 성격, 성별, 나이를 막론하고 타인의 환심을 사는 것에 극도로 능숙했던 것은 특유의 쇼맨쉽 덕분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외모지상주의]]에서 오는 이익 또한 엄청나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외모지상주의는 현대사회에도 심하지만 당시에는 실제 사료에까지 외모가 출중했다거나 외모가 못해서 까이거나 하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사람의 외모를 중요시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정사 상에는 조조가 원래 청하공주의 사위로 추천하려고 했던 정의에 대해 조비가 '사팔뜨기라서 안된다'고 하후무를 추천하기도 하고, 저런 식으로 외모가 혼담에 영향을 미친 것도 아닌 맹달이나 제갈량 같은 인물들도 외모가 출중했다는 기록이 있다. 맹달이 위/진 측이건 촉한 측이건 굳이 미화할 이유가 없는 인물임을 감안하면, 당시엔 인물평에서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았음을 추정해볼 수 있다. 특히나 원소는 명망, 이미지의 덕을 많이 봤고 본인도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인물인만큼, 당대 사람들이 원소를 평할 때 그 훌륭한 외모가 특히나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6년상과 낙양에서의 재야 활동 / 맹진 초토화와 원씨 일족 몰살이라는 사례를 제외하고 봐도 정치 쇼를 자주 벌였는데, 동탁과 대판 싸우고 낙양을 떠날 때는 낙양성 동문에 관인과 부절을 보란듯이 걸어놓고 나가면서 동탁 집권의 정당성을 대놓고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퍼포먼스를 벌였고[* 상술했듯, 발해태수직을 받아들였음에도 사례교위직을 자칭한 것 역시 동탁과 그가 추대한 헌제 정권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퍼포먼스였다.], 한복의 자택에 찾아와서 그 아들에게 테러를 벌인 [[주한#s-1|주한]]을 붙잡아 참수했으면서도, 전풍과 심배, 주한을 기용하여 대놓고 충성경쟁을 시키듯 구 한복파에 대한 백색테러를 조장[* 전풍은 경무와 민순을 죽였고, 주한이 테러하기 전에도 한복은 항상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했던 것이나, 경포를 시켜 칭제를 건의하도록 하다가 여론이 나쁘자 경포를 죽여 입막음해버린 사건도 교묘한 느낌을 주기는 마찬가지. 여포의 경우는 세력 내부의 여론이 나쁜 것을 감지하자 여포 스스로 원소에게 자신이 낙양으로 떠나겠다고 건의했는데, 사례교위직을 여포에게 양도하며 환송식까지 거하게 벌여놓고 뒤로는 자객을 보냈다. 물론 정치쇼 벌이던 군벌들은 조조, 유비, 손권 포함해 한둘이 아니지만 유독 두드러지는 편. 겉으로는 관후하나 시의심이 많다는 평가는 이런 측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나 쇼맨쉽이 꼭 이렇게 더러운 쪽으로만 나타난 건 아니라서, 공손찬과의 전투에서 포위되자 도망은커녕 관모를 집어던지며 선두에서 분전해 포위를 풀거나 장연의 업성 전복 소식으로 멘붕에 빠진 참모진을 태연자약하게 하드캐리하는 폭풍간지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애초에 원소가 당대 최고의 명망을 지녔단 것은 그의 음험한 면모와 쇼맨십이 효과적이었단 얘기다. 당연히 적들이야 그의 음험함과 이중적인 면모를 비꼬겠지만 어쨌든 겉보기엔 그가 당대 사람들의 추앙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 [[정태]]는 동탁에게 아첨하면서 원소를 수도에서 나고 자라 외모만 반듯한 멀대 같은 인간이며 한주먹거리도 안될 겁쟁이로 평가했다. 정작 정태는 원소와 내통하고 있었으며 동탁의 호의를 사 군사를 얻으면 함께 동탁의 뒷통수를 후려갈길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에 본심이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본디 원소가 관료로서의 뚜렷한 군사,행정적 업적이나 기반은 거의 전무한 채 재야에서의 반정권 퍼포먼스와 여론몰이 등 명분 자체는 그럴듯하지만 나쁘게 보면 정치적 선동에 가까운 방식으로 거물로 성장했던 점을 볼때 나름대로 뼈가 있는 평가. 물론 겁쟁이라는 평가는 절대로 사실이 아니다. 각종 암살 위협이 빈번한 마도가 된 낙양을 내부에서 뒤엎겠다는 배짱으로 볼 때는.[* 불리한 전투에서 오히려 투구까지 벗고 선두에서 활약하거나, 온갖 정치적 음모를 선두에 나서서 꾸미거나 한 것을 보면 어떻게 봐도 원소의 배포는 엄청나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까지 보면 원소의 정신력은 만렙이라고 봐야한다.] 한편 겉으로는 온후관대하나 희노의 감정을 얼굴에 나타낸 적이 없었다는 후한서의 평을 볼 때, 정작 스스로는 감정적으로 극히 절제된 채 매사에 주위 사람들의 감정을 읽고 계산적으로 행동하는 무척 피곤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중노동에 가까운 [[삼년상]]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그것도 연이어 지냈던 걸 보면 기본적인 체력이 어지간히도 좋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런 자기학대에 가까웠던 생활양식은 스트레스가 쌓이기 매우 쉽고 또 실제로도 결코 장수한 편은 아니다. 때문에, 체력이 쇠퇴하는 중장년에 접어들면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 조조가 보신을 위해 음식 섭취에 신경을 썼다는 설이 있고, 손권이 술로 오명이 있었다는 것으로 볼 때, 군주의 건강 관리도 중요한 부분이므로, 원소의 보신 부분은 결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만화 [[삼국지톡]]에서는 이러한 점에 대해 그의 성격적 결함과 이미지 중시를 결부시켜, 인간성이 부족하고 누구도 믿지 않았던 원소가 수하들을 통제하기 위한 완벽한 이미지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6년상 당시 생긴 지병을 일부러 거의 치료하지 않고 악으로 버텼던 것으로 묘사했다. 물론 원소가 실제로 치료를 받지 않았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6년상은 말할 것도 없고 항상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것같은 행동은 신체적/정신적으로 스스로를 갉아먹는 것이긴 하다.] 친구였던 조조의 경우는 종종 호방하다 못해 찌질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그 시대 기준에서 자기 감정의 희노애락에 굉장히 충실한 사람이었고, 이것이 건안문학의 기풍이 되기도 했다. 기뻐할 때 기뻐하고 슬퍼할 때 슬퍼하고 두려워할 때는 두려워 하며 감정을 내보였던 조조는 여러 번의 난국에서 거의 패망에 가까운 피해를 입어도 부드러운 나뭇가지처럼 넘기면서 멘탈을 추스리며 다시 회복했지만, '''자기 세력의 본거지인 동시에 가족이 있는 업성이 함락되어도 눈하나 깜빡도 하지 않을''' 정도로 감정을 내보이는것을 피하며 늘 지독하게 강하게 버티는것을 선호했던 원소는 [[관도대전|일생 최대의 실패]]로 인해 한번 부러지고 그걸로 생을 끝마쳤다. 이러한 인간상의 대비도 재밌는 부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