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소(삼국지톡) (문단 편집) ==== Round 1. 여포 vs 유비 ==== 6화부터 등장. 세월이 흐른 만큼 광대뼈가 살짝 도드라져 보이는 중년 이미지로 변모했고 모노클 속성이 추가되었으며, 놀랍게도 [[원담|장성한]] [[원희|아들]][* 어려도 고등학생은 되어 보이고 많이 잡으면 20대 초반까지도 잡아 볼 수 있다.]이 하나도 아닌 둘이나 있었다![* 일단 해당 회차에서 첫 등장한 건 장남 원담과 차남 원희뿐이나, 원담이 '아버지는 우릴 부끄러워 하셔서 인터넷 프로필에 우리가 신청하기 전까지 가족관계가 없다고 써놓았다'고 발언한 것을 통해 '원담과 원희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이고 아직 등장하지 않은 삼남 원상이 편애받는 전개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관도대전 41화에서 원상이 등장해 노골적인 편애를 받는 모습이 나와서 그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품행이 단정치 못하다는 이유로 두 아들을 갈구다가 --본인도 갈구기가 지겨운지 줄임말까지 쓴다[* 머리를 단정하게 다듬어라(구구절절 잔소리) → 머리 다듬었는지? → 머리 → ㅁㄹ]--, 장남 원담을 원술의 죽은 형 원기의 양자로 입적시켜 가문의 정통성을 잇게하고 청주의 전해를 물리쳐 공손찬을 막으라고 지시한다. 한편 기주가 점점 부유해지고 권세가 커져가고 있음에도 매일같이 자신을 천출이라고 무시하던 원술과 밑에서 슬슬 치고 올라오는 공손찬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상황에서, 조조가 문자로 근황을 물어오자, 유비와 손잡은 건 단지 백성들의 민심을 다스리기 위한 정치수단이었다며 달래고 옛날의 추억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조조의 협천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동탁의 꼭두각시를 데려다가 소꿉놀이를 하면서 스스로 대장군직에 오를 수 있냐며 비웃는데, 사실 한편에서는 조조가 자신따라 협천자로 황제를 구한 영웅이라는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하면서 완전히 여론을 뒤집고 자신과 점차 비등해진 것에 굉장히 예민해져 있었다. 그런데 조조가 황제 폐하를 졸라 특별히 얻어냈다며 '''삼공(三公)직을 하사할테니, 자신과 황제폐하에게 잘 보여야 할 거'''라며 깝죽대자... >'''...아만.''' >'''{{{#!html Are you kidding me?(죽고 싶은지?)}}}''' 바로 '''조조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감히 날 무시하다니 죽고 싶냐, 천한 내시 손자인 너를 [[따까리|보듬고 보호하고 이끌어주며 나락에 떨어질 때마다 몇번이고 살려줬는데]], 어떻게 은혜를 원수로 갚냐, [[헌제(삼국지톡)|하찮은 허수아비 황제]]를 곁에 낀 걸로 날 발 아래에 둘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냐'며 '''노골적으로''' 무섭게 협박한다.[* 조조 왈, 원소는 한 번 빡치면 눈이 돌아간다고. 정말로 이때는 평소처럼 우아하게 이미지 관리를 하기는커녕, 분노를 주체 못 해 언성을 높이고 책상을 내리치고 책상 위 물건들을 마구 쓸어버리는 등 있는 대로 성질을 부리면서 굉장히 낯선 모습을 보여주었다. 원소가 분노를 이런 식으로 표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곽도가 선을 넘었다는 이유로 손을 올렸을 때조차도 '분노를 주체 못 해 아랫사람을 구타하는' 느낌이 아니라 '무례하고 방자한 아랫사람을 엄격하게 꾸짖는' 이미지를 유지했었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게 동탁이 낙양에서 깽판쳤을 때인데, 그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에 겁먹은 조조가 바로 사과하고 대장군 직을 넘겨줌으로써 일단은 무마되지만, 원소는 '내 머리 위에 올라서려 한 자들이 [[숙청|어떻게 되었는지는 말 안해도 알거다.]] 이제 우리 사이는 돌이킬 수 없다. 난 단 한순간이라도 내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 자의 얼굴은 절대 잊지 않는다'며 다음에 만날 때는 적이 될거라고 경고를 남기고 전화를 끊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