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자론 (문단 편집) === 물리학에서의 원자설 === 본래 돌턴 등의 원자설은 화학반응과 화합물의 조성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고전적인 물리학과는 무관하였으나, 19세기 열역학의 발전으로 기체의 물리적 성질을 설명할 필요가 생겨, 클라우지우스 등이 [[기체 분자 운동론]]의 형태로 (화학의 원자론과는 별개로) 원자론을 도입하였다. 이후 [[루트비히 볼츠만]]의 업적을 통해 고전 통계역학이 완성되었으나, 그 기반이 된 원자의 존재 자체는 물리학의 관점에서는 입증불가능한 것이었으므로 물리학에서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예컨대 마하 수(Mach number)를 제창한 19세기의 독일 물리학자 [[에른스트 마흐]]는 볼츠만을 공개적으로 공박하며 원자의 존재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의 에른스트 마흐는 과학이라기 보단 철학에 가까운 주장을 펼쳤다. 떠오르는 신성이었던 천재 물리학자 볼츠만은 비판에 크게 상심하여 이후 불행한 만년을 보낸다. 이후 원자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다양한 방면으로 나타나게 된다. 1894년 조지프 라모어는 원자론에 영향을 받아 전자라는 입자가 존재할 것이라고 예측했고 1897년 [[조지프 존 톰슨]]이 [[전자]]를 발견하여 그를 입증한다. 1899년 레일리는 [[레일리 산란]]을 이용하여 단위부피당 공기분자의 숫자를 계산한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브라운 운동]]을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1908년 페랭이 브라운 운동을 측정하여 아보가드로 수를 결정한다. 1910년 밀리컨은 기본전하를 재어 진정으로 직접적인 방식으로 아보가드로 수를 결정한다. 1912년 라우에가 X선 회절 실험으로 [[결정]]의 원자 사이 간격을 측정하면서 물리학에서 원자의 존재는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돌턴의 원자론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개념들이 등장하였다. 1896년 베크렐은 [[방사선]]을 발견했고 1903년 어니스트 러더퍼드와 프레더릭 소디는 방사선이 원소의 변환으로 인해 나오는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1910년 소디는 화학적 성질은 같지만 [[방사성 붕괴]]방식이 다른 [[동위원소]]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돌턴의 정의와 맞지 않아 문제가 되었던 원자의 개념은 [[어니스트 러더퍼드]]가 1911년 [[원자핵]]을 발견한 후 1919년 핵을 이루는 [[양성자]]를 발견하고 [[제임스 채드윅]]이 1932년 [[중성자]]를 발견하면서 앞선 문제들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원자모형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화학적 원자의 물리적인 정체 또한 밝혀지기에 이르른다. [[하이젠베르크]]등에 의해 모든 것을 파동함수에 대한 연산으로 표현하는 [[양자역학]]이 대두되었고, 파동함수는 고전적 파동과는 다르게 양자화된 파동의 형태로 이해되었다. 양자역학에 힘입어 전자의 [[오비탈]]로 원자의 화학적 성질과 원자간 화학결합을 설명하는 [[물리화학]]이 등장하게 된다. 물리화학 이후로 화학에서의 원자론은 물리학에서의 원자론과 완전히 합치된 상태이다. 더 이상 원자설에 대해서 반박할 여지가 없이 쐐기를 박았다고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