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제(동진) (문단 편집) === [[붕어#s-2|붕어]] === 영창 원년(322년) 정월, 왕돈은 유외와 조협을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무창에서 군사를 일으켜 3월에 건강으로 쳐들어갔다. 사마예는 조협과 유외의 손을 잡고 울면서 그들에게 말을 주어 각기 스스로 살 길을 찾으라고 당부했다. 유외는 간신히 후조의 석륵에게 망명했지만[* 그러나 유외는 이로부터 11년 후인 333년에 [[석호(후조)|석호]]가 석랑과 석생의 난을 토벌하러 갈 때 종군했다가 석생의 장수 곽권에게 패하고 전사했다.] 조협은 연로해서 말을 못 타는 바람에 멀리 가지 못했다. 거기에 그는 인심을 잃어 결국 강승에서 사로잡혀 즉결 처형당하고 머리는 건강의 왕돈에게 보내졌다. 왕돈은 [[승상]]이 되었으나, 교만하고 횡포함이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공물은 대부분 그에게 들어가고 심충, 전봉, 제갈요 등을 앞잡이로 세웠는데 이들은 갖은 악행을 저질렀다. 남의 땅과 가옥을 멋대로 침입하고 빼앗으며 대낮에도 약탈을 일삼고 옛 무덤을 도굴했다. 이로 인해 사마예는 분통이 터져 윤11월, 재위 6년 만에 47세의 나이로 붕어했다. 영창 2년(323년) 2월, 건평릉에 안장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