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조비사 (문단 편집) == 상세 == 저자가 누군지는 전해지지 않고, 딱히 누구라고 확정할 만한 증거도 없지만 내용을 보면 [[칭기즈칸]]을 굉장히 가까이에서 직접 목격했던 인물임은 분명해 보인다. 칭기즈칸의 어머니 [[호엘룬]]이 주워다 키운 칭기즈칸의 의제들 중 한 명인 시키 후투후가 아닐까 하는 설이 있다. 시키 후투후는 칭기즈칸 일족 중에 가장 먼저 [[문자]]를 익힌 인물이었고, 칭기즈칸에 의해 몽골 법률 《야삭》의 집필 및 관리자로 임명되었으며, 《원조비사》에 그와 관련된 일화가 여러 번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확정할 만한 증거가 아니기 때문에 그저 유력 후보의 하나일 뿐이다. 《원조비사》는 처음 기록될 때는 [[위구르 문자|위구르]] 또는 [[파스파 문자]] 등으로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원나라의 멸망 등으로 인해 위구르 또는 파스파 문자로 적혔을 원본은 이미 산일되었으며, 황당하게도 [[명나라|명]]대에 [[몽골어]] 교육용으로 만들어진 '''[[한자]]로 된 음차 표기+대역+총역'''본이 현재로서는 유일하게 유통되는 버전이다. 다행인 점은 단순 번역본이 아니라 '교육용'으로 만들어진 자료이기 때문에, 발음에 대한 표기나 의미 대응이 대단히 엄밀하여[* 중국어에는 없는 몽골어의 /q/, /r/의 표기를 위해 /h~x/ 발음을 지닌 한자에 '中'을, /l/ 발음을 지닌 한자에 '舌'과 같은 소첨자를 넣었을 정도.] 이것을 고전 몽골어로 환원하는 것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http://www.chinaknowledge.de/Literature/Historiography/menggumishi.html|여기]](영어)에서 몽골비사 첫 장의 예시를 볼 수 있다.] 또한 비슷한 내용이 《[[황금사]]》에도 전하고 있어, 비교 및 대조가 가능한 것 또한 특징이다. 현재 사부총간본(四部叢刊本), 엽덕휘본(葉德輝本), 영락대전 15권본(永樂大典十五卷本) 등의 판본이 전해지고 있으며 판본들 사이에 내용은 거의 차이가 없어 원전이 충실히 기록된 것으로 보고 있다. 중반부에 다룬 [[자무카]]와의 13익 전투(1190년)와 금나라의 타타르 정벌(1194년) 동안 테무진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원조비사》에도 없기 때문에, 대략 4년간의 공백 동안 칭기즈 칸의 행적은 불분명하다.[* 테무진은 이 전투에서 패하고 나서 '''어떤 기록에서도 등장하지 않다가 ''', 4년이 지나서야 다시 사서에 이름을 드러낸다. 일설에는 노예로 팔려가 고초를 겪었다는 설도 있는 모양이다. 사실 기록이 없기 때문에 상상의 영역이 될 수밖에 없는데 확실한 점은 [[자무카]]와의 일전에 패배한 후 재기할때 까지, 테무진에게는 고난의 시간이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