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효 (문단 편집) === 입당 시도와 깨달음 === 젊을 적 원효는 촉망받는 유능한 승려로, [[의상(신라)|의상]]과 함께 [[당(통일왕조)|당]]나라로 [[유학]]을 가려 했었다. 첫 번째 입당은 실패로 끝났고 두 번째 입당 시도에서 가는 도중 날이 어두워져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차에 동굴에 들어가서 잠을 자다, 잠결에 목이 말라 웬 물이 담긴 바가지가 있어서 거기에 든 물을 벌컥 들이키며 "아, 그 물 참 달고 시원하다."라고 좋아했다. 그런데 다음 날 일어나서 주변을 보니 [[충격과 공포]]. 동굴은 파묘([[破]][[墓]])[* 무덤이 무너진 것을 의미한다.]된 [[무덤]]이었고, 그가 마셨던 건 [[해골]] 바가지에 담긴 썩은 물이었다. 경악한 그는 구토를 했는데, 직후 썩은 물도 목이 마를 때 모르고 마시니 달았다는 것에서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깨달음'''을 얻고는 유학을 포기했다고 하는 이야기. 이 때 같이 가던 의상은 그대로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서 [[화엄종]]을 연구한 뒤 신라로 돌아와 [[부석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바로 이 일화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거의 누구나 다 안다는 그 유명한 해골물 사건이다. 다만 이 해골물을 마셨다는 이야기 자체는 송나라 말기에 저술된 임간록에서 처음 나타나는 것으로 꽤 후대에 등장하는 요소다. 원효의 깨달음과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송고승전의 의상전인데 그 내용을 설명하면 이렇다. 원효와 의상이 입당을 시도하였는데 비가 와서 어느 토감(土龕) 사이에 머물러 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본인들이 묵은 장소가 해골이 있는 오래된 무덤인 것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비바람이 불고 땅이 질척여 무덤에서 하루를 더 보냈다. 그런데 무덤인 것을 알고 나니 두려운 귀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원효는 전날에는 평범한 토굴인 줄 알아서 편하게 잤었지만 지금은 해골이 널부러져 있는 무덤인 것을 알고는 귀신을 보게 되었다면서 깨달음을 얻는다. 일본 측 기록에서도 비슷하게 그가 비를 피해 토굴로 들어갔는데 그때는 그렇게 편할 수가 없더니, 다음 날 그 토굴이 반쯤 무너진 무덤이라고 알게 되자 그날 밤엔 [[도깨비]]가 우글거려서 '모든 것이 마음 먹기 달렸다'는 진리를 깨달았다는 전설이 있다. 이 두 이야기가 합쳐진 버전, 그러니까 동굴인 줄 알았던 게 무너진 무덤이고 해골물도 마셨다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원효가 사실은 의적(혹은 의상)과 더불어 중국에 단기간이나마 유학하였고, 유학 기간 동안 [[삼장법사]] 현장의 밑에서 공부하는 한편 일본인 승려 가재를 제자로 두었다는 주장도 있다.([[http://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1756|관련 기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