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월경지 (문단 편집) === 유럽 === 아시아에서는 국가간의 월경지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유럽에서는 현대에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중세 서유럽에서는 근대적인 국가 개념이 잡히기 전이라 오늘날처럼 국경을 넘나드는 일이 어렵지 않았고[* 사실 이외에도 [[동북아시아]]와는 달리 [[유럽]] 국가들이 자연적인 국경이라고 할 지형이 그리 많지 않아서 국가 간 이동이 용이했던 지리적인 원인도 있다. [[북한이탈주민]]의 [[탈북]]보다 [[동독]] 사람들의 탈동이나 [[소련]] 시민들의 서방권으로의 망명이 더 쉬웠던 것도 근본적으로는 이 때문이다. 사족으로 이것 때문에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해 사회보장제도와 정치적·문화적 자유에 대해 [[유럽]] 각국이 크게 신경을 써야 했고 이는 유럽, 특히 [[서유럽]]이 [[사회민주주의]]와 [[민주사회주의]]의 본산이 된 이유로 작용했다.] 거기에 [[봉건제]] 특유의 복잡한 상속 방식까지 더해져 월경지가 없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국경선이 복잡했다. [[신성 로마 제국]]이나 [[프랑스 왕국]]을 하나의 국가로만 그리지 않고 그 내부의 봉신 국가들을 모두 표시한 지도들을 보면 국경선이 매우 난잡하다. 예를 들어 A국 영주가 먼 친척의 땅 B국 영토를 상속받아 [[동군연합|서로 멀리 떨어진 두 땅을 동시에 통치하게 되는 것]]은 중세 기준으로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런 이유로 생긴 월경지들은 봉건제의 시대가 끝나고 근대 국가가 성립되면서 대부분 행정구역 개편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었지만 일부는 현대까지 그대로 유지되어 월경지를 형성하게 되었다. 또다른 이유는 아시아와 유럽의 문화적·사회적 차이 때문이다. 아시아권에서 국경은 넘지 못할 금단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고 전통적으로 특별한 사유와 허가 없이 국경을 넘는것은 죽음으로 다스려지는 중죄였던 반면 유럽은 국경을 넘는 데 큰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특별한 이유 없이 국경을 폐쇄하는 건 상대국을 향한 도발이자 비인도적인 조치'''로 여겨진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이 [[영국]]과 [[프랑스]]가 최악의 원수 지간이었던 시기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던 때에 [[대륙 봉쇄령]]을 시행한 데는 이러한 부분도 작용된 것으로 보이며 반대로 [[EU]]라는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유럽 공동체 내에서 외국으로 넘어가는 게 옆동네 다녀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즉, 유럽에서는 '월경지'가 이상한 게 아니라 월경지가 '문제가 되는' 게 이상한 것에 가깝다. 예를 들어 [[베를린 봉쇄]]는 서베를린이라는 월경지를 없애는 게 아니라 가상적국인 서독 시민들이 동독을 통과하게 하는 방향으로 해결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