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월경지 (문단 편집) ==== 과거 ==== * [[조선]] - [[영암군]]은 [[서해]]에 접한 고을이면서 [[해남군|해남현]] 너머 '''[[남해]]'''에 수많은 섬들과 해안 지역을 갖고 있었다. 현재의 해남군 옥천면, 북일면, 북평면, 송지면과 [[완도군]] 노화읍, 보길면, 소안면, 청산면, 그리고 [[제주시]] 추자면이 과거 영암군의 월경지에 해당한다. [[안동시|안동대도호부]]도 북쪽에 완전하게 접하고 있던 예안현 너머의 산골들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 영역들이 현재의 [[봉화군]] 영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오리지널 [[봉화군|봉화현]]은 봉성면과 그 주변을 거느리던 작은 고을이다. 오늘날 [[대전광역시]]의 중심축인 유성온천-둔산신도시-은행동-산내동 라인은 대전군의 전신인 회덕현도 진잠현도 아닌 [[공주시|공주목]]의 견아상입지였으며 동북부에는 [[청주시|청주목]] 월경지까지 있었고 [[진도군]]이 내륙 지역에 땅을 갖고 있다거나 무안 운남·해제반도와 신안군 지역을 영광·광주·나주·함평 등이 사이좋게 갈라먹는 등 상상 초월의 땅따먹기의 향연을 [[대동여지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 [[금나라]] - 중국쪽 땅, 러시아쪽 땅: 원래는 하나로 이어져 있던 [[제국]]이었지만 [[몽골 제국]]이 침공하는 바람에 아예 영토가 두동강 났다. 두 영토 사이에 몽골 제국 일부분이 있었고 곧이어 나뉘어진 영토 중에 동부(러시아쪽 영토)는 독립하여 [[동하]]를 세웠지만 [[금나라|금]]과 [[동하]] 둘 다 몽골 제국에게 처참히 파괴되어 멸망했다. * [[남아프리카 공화국]] - [[월비스베이]]: 원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직접 관할하는 [[나미비아]] 영토에 둘러싸인 월경지였으나 [[1994년]] [[3월 1일]]에 [[나미비아]]에 편입되었다. * [[대한민국]] - [[옹진반도]]: [[8.15 광복]] 이후 북위 [[38도선]]이 그어지면서 옹진반도는 대한민국이 통치했지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에는 [[북한]]이 있어서 사실상 섬이나 다름 없었다. 결국 [[6.25 전쟁]]이 일어나자 북한이 점령하었고 휴전 후 38선 대신 [[군사분계선]]이 설치됨으로서 현재까지 북한 지배하에 있다. * [[대한민국]] - [[북제주군]], [[남제주군]]: 1946년 제주도가 전라남도에서 분리되면서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이 설치되었는데, 1955년 북제주군 제주읍이 제주시로 승격되며 북제주군은 제주읍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분리되었다. 남제주군은 1981년 서귀읍과 중문면이 통합되어 서귀포시가 됨에 따라 역시 좌우로 분리되었다. 이 지역들은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며 각각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편입됨에 따라 현재는 월경지가 아니게 되었다. * [[바이마르 공화국]] - [[동프로이센]]: [[독일 제국]] 시절에는 월경지가 아니었다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단치히]] 회랑 ([[폴란드]]령 및 단치히 자유시)를 통해 본토와 단절되어 있었는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폴란드와 소련이 나누어 가지면서 북부 지역이 [[칼리닌그라드주|러시아의 월경지]]가 되었다. * '''[[방글라데시]]·[[인도]] - [[쿠치 베하르]]''': 2015년 8월 1일 양국의 월경지 교환 협상이 타결되어 방글라데시의 다하그램 지역을 제외한 모든 월경지가 사라지고 드디어 제대로 된 깔끔한 국경선이 생겨났다. * [[독일 통일]] 전의 [[프로이센 왕국]]: 영토가 독일 내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중세 봉건주의의 흔적. * 독일 [[튀링겐|튀링겐 제후국]]들의 영토: 여덟 제후국(1826~1920 기준)이 다세대 주택처럼 붙어 있었던 데다 이웃 프로이센 왕국의 월경지도 뒤섞여 월경지투성이가 되었다. 문서 참고. * [[러시아]] - [[크림반도]]: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2014년 크림 위기]]로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로 편입된 후부터 2018년 [[크림 대교]]가 개통하기까지 약 4년 간 육로로 우크라이나를 경유하거나 배로 케르치 해협을 건너야만 러시아 본토로 갈 수 있었던 월경지였고, 이후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동남부 주를 병합하면서 완전히 러시아의 본토와 이어졌다. 세계에서는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동남부를 러시아의 영토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지만 일단 러시아가 실효지배하고 있다. *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 [[무르만스크]]: 1940년, 카렐리야 지방에 [[카렐리아-핀란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생기면서 [[무르만스크]]는 러시아의 월경지가 되었으나 1956년 [[카렐리아-핀란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카렐리아 지방]]이 러시아랑 합병되면서 무르만스크는 더 이상 월경지가 아니게 되었다. * [[미국]] - [[괌]]: 1898년 스페인에게서 이 섬을 획득한 후 1918년까지 [[독일]]영해에 둘러싸여 있다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태평양의 독일령 섬들이 일본에 넘어가면서 이후 쭉 일본 영해에 둘러싸였다. 물론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주위의 [[사이판]] 등 모든 일본령 섬들을 미국이 차지하여 현재는 월경지가 아니다. * [[미국]] - [[노스캐롤라이나]]: 1861년 5월 6일부터 20일까지 월경지였다. 미국의 다른 주에서 노스캐롤라이나로 가려면 [[남부맹방]]을 지나가야 했다. * [[서독]] - [[베를린|서베를린]]: 다만 서베를린이 서독의 월경지라는 말에 어폐가 있는 것이 분단 시절 베를린은 공식적으로 동/서독 어느 나라도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미/영/프/소 4개국의 점령지였다. * 서베를린 - 서베를린의 월경지들: 서베를린 자체도 서독 본토의 월경지였는데 서베를린 자체에도 작은 월경지들이 여러 개 딸려 있어서 골치가 아팠다. 동·서독 분단 직후에는 서베를린에 자그마치 12개의 작은 월경지들이 딸려 있었다. [[https://en.wikipedia.org/w/index.php?title=West_Berlin&oldid=623819022#Exclaves|#]] 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후 서독이 서베를린의 일부 월경지들을 동독의 다른 땅과 교환하거나 양도해서 처분하기도 했으며 슈타인슈튀켄이라는 곳은 아래와 같은 방법을 통해 서베를린 본토와 연결시켜 버렸다. * 슈타인슈튀켄(Steinstücken)[[https://en.wikipedia.org/wiki/Steinst%C3%BCcken|#]]: 이곳은 서베를린에 속하는 월경지(서독 '본토'와 서베를린 '본토' 입장에서 월경지)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꽤 살고 있었고 서베를린 본토와 왕래가 적지 않은데 항상 [[동독]] 땅을 거쳐 가야 하니까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데다 동독 소속 철도 선로가 슈타인슈튀켄을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있어서 선로의 동쪽 지역과 서쪽 지역을 연결하는 통로가 어떤 식으로든 필요했다. 그래서 서독 정부는 서베를린 '본토'와 슈타인슈튀켄을 잇는 기다란 땅을 동독한테 받아서 서베를린으로 편입하고 거기에 서베를린 '본토'와 슈타인슈튀켄을 잇는 도로를 만들려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철로를 가로지르는 다리(Stahnsdorfer Brücke)의 건설도 필요했는데 문제는 동독 철도 노선이 그 다리 밑을 통과하고 있기 때문에 동독 정부는 이 다리의 소유권을 서독에 넘기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희한한 해결책이 제시되었는데 다리 위 지면과 그 위의 상공을 서독 영토·영공으로, 다리 아래의 공간과 땅은 동독 영토·영공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이것을 동독 정부가 받아들였고 1971년 동·서독 정부와 독일에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었던 4개국(미국·영국·프랑스·소련) 정부가 이 방안에 합의했다.[[https://en.wikipedia.org/wiki/Four_Power_Agreement_on_Berlin|#]] 합의 내용에 따라 서독 정부는 당시까지 서베를린에 속했던 다른 월경지 여섯 곳[* 이 여섯 곳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과 400만 서독 마르크를 동독 정부에 주고 문제의 땅을 넘겨받았다. 이듬해 서독은 이 땅에 동독 철도를 넘는 다리를 포함해서 서베를린 '본토'와 슈타인슈튀켄을 연결하는 도로를 완공해 이것을 베른하르트 바이어 도로(Bernhard-Beyer-Straße)라고 명명했다. 철도가 통과하는 지점은 같은 [[경도]]·[[위도]]상에 동독의 영토·영공과 서독의 영토·영공이 포개어진 기묘한 형태가 되긴 했지만 어쨌든 슈타인슈튀켄은 서베를린 '본토'와 연결돼 월경지 상태를 면하게 되었다. * [[소련]] - [[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1991년 8월 24일에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우크라이나]]로 독립하자 당시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하고만 국경을 접하던 [[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8월 27일에 [[몰도바]]로 독립할 때까지 소련의 월경지였다.[* 물론 소련은 우크라이나와 몰도바의 독립은 물론 [[발트 3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의 독립도 승인하지 않은 상태였다.] * [[아메리카 연합국]] - [[뉴욕(주)|뉴욕 주]] 타운라인: 1861년에 아메리카 연합국에 가입하려다 미수에 그쳤으나 [[남북전쟁]] 중에도 CSA 측에 군사를 보냈고 종전 후에도 1920년대까지 미국 연방정부에 대한 납세를 거부했을 정도로 저항을 계속했는데 1946년에야 이곳 주민들이 '의례적인' 연방 복귀 주민투표를 하면서 저항을 완전히 끝냈다. * [[오스트리아 대공국]] - 외지 오스트리아(Vorderösterreich): [[슈바벤]]과 [[알자스]] 일대에 흩어진 [[합스부르크 가문]]의 월경지로 가문의 본령인 [[스위스]]의 [[합스부르크#s-1]] 지역과 가까웠지만 관리가 힘들어 알자스 지역은 [[프랑스 왕국|프랑스]]에게 야금야금 갉아먹혔고 결국 [[나폴레옹 전쟁]]으로 [[바덴]], [[뷔르템베르크]] 등 슈바벤 지역의 국가들에게 양도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빈 회의]]에서 이 지역들을 최종 포기하는 조건으로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이탈리아 북부를 병합했다]]. * [[이스라엘]] - [[제1차 중동전쟁]] 직후에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https://en.wikipedia.org/wiki/1949_Armistice_Agreements|휴전협정]]에 따라 [[https://en.wikipedia.org/wiki/Mount_Scopus|스코푸스 산]]을 요르단령 동예루살렘 안에 위치한 이스라엘의 월경지로 설정했다. 거기에 있었던 하르 하초핌(Har Hatzofim) 캠퍼스를 폐교한 [[https://en.wikipedia.org/wiki/Hebrew_University_of_Jerusalem|히브리 대학교]]는 이스라엘령 서예루살렘에서 기바트 람(Givat Ram) 캠퍼스를 개교했다. [[제3차 중동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이스라엘 정부가 [[https://www.youtube.com/watch?v=80TbsM-BVIE|히브리 대학교의 하르 하초핌 캠퍼스를 오랫만에 개교했으며]] 곧이어 이스라엘의 서예루살렘시와 요르단의 동예루살렘시를 합병한 통일 예루살렘(오늘날의 서예루살렘 지방)이 정식으로 출범하면서 월경 상태가 해소되었다. 하르 하초핌 캠퍼스를 재건하면서 [[인문계]] 캠퍼스로 재편성한 히브리 대학교는 기바트 람 캠퍼스를 수리하면서 [[이공계]] 캠퍼스로 전환했다. * [[중국]] - [[구룡성채]]: 형식상으로는 1997년 [[홍콩 반환]] 직전까지 [[홍콩]]에 있었던 중화인민공화국의 월경지였다. 중국 정부와 영국 정부 모두 이 지역을 관리하는 것을 거부해서 홍콩 최악의 무법지대로 변해 버렸다. * [[파키스탄]] - [[동파키스탄]]: 1971년 동파키스탄이 독립해 지금의 방글라데시가 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