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구르/역사 (문단 편집) == 근현대 == [[파일:86638964-DCDB-4BE2-AD59-581BDAC4BA12.jpg|width=64%]] [[파일:Uyghur Sufi.jpg|width=34%]] * 20세기 초반 위구르인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 신장성이 새롭게 한족의 제국주의 식민지로 변화하려는 찰나, 러시아 제국이 여기에 제동을 걸었다. 1881년 2월 상트 페테르부르크 조약을 통해 러시아와 청나라 조정간의 통상이 자유화되자 러시아 제국 상인들이 유입되어 러시아산 물산을 중국산 공산품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카슈가르의 시장에서는 루블화가 청나라 화폐보다 더 잘 통용되었다. 1902년부터 1904년까지 590만 루블어치의 상품이 신장에서 러시아로 수출되었고[* 주로 목화나 말린 과일 같은 1차 생산품.] 340만 루블어치의 상품이 수입되었다. 신장에 주둔한 청군은 러시아가 언제 이 지역으로 쳐들어올지 조마조마하면서 청나라 조정에 증원군을 요청하는 상황이었지만 당시 청나라는 착실히 막장 테크를 밟고 있던 시점이라 많은 지원을 보내기 힘들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붕괴하면서 [[군벌시대]]에 들어섰으나 위구르는 여전히 [[중화민국/북양정부]]의 영역으로써 [[양쩡신]], [[진수런]], [[성스차이]] 등 한족 군벌에게 통치당하게 된다. 이시기 위구르 민족주의가 태동하였는데 위구르라는 이름은 원래 [[동투르키스탄]]의 [[튀르크인]]을 총칭하는 의미로써 현재 위구르족은 과거의 위구르와는 혈연적으로 많이 다르다. 위구르라는 이름은 러시아의 튀르크어 학자인 세르게이 말로프(Сергей Малов, [[1880년]] ~ [[1957년]])가 신장의 무슬림 농민들의 언어와 중세 카를루크어 및 [[고창회골|위구르 이디쿠트]]의 언어 사이의 유사성에 주목해 후대에 붙인 이름이다. 위구르인들 역시 가만히 있지만은 않고 [[터키인]]과 러시아 [[타타르]]인 교사들을 신장으로 초빙하면서 이슬람 학문과 서구의 최신 학문을 동시에 배우며 튀르크 민족주의를 확립해나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