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구르/역사 (문단 편집) === [[동튀르키스탄 제1공화국]] === 1928년 6월 11일, [[국민혁명군]]이 [[국민당의 2차 북벌]]을 통해 [[장쭤린]]을 축출하고 베이징을 점령하는 것을 본 군벌 [[양쩡신]]이 [[중화민국/국민정부]]에 대한 복종을 타전하면서 산하에 들어간다. 얼마 안 가 1928년, 양쩡신의 부하였던 [[진수런]]이 양쩡신이 국민당의 사주로 살해된 틈을 타서 집권했다. 진수런은 양쩡신과 다르게 현실 감각이 전무했다. 골수 중화주의자였던 그는 좌종당이 야쿱 벡을 공격할 때 협력한 위구르인 칸들과 벡들의 특권을 철폐하고, 동시에 위구르인 농민들의 재산을 함부로 뺏어 한족들에게 분배하고 항거하는 위구르인들을 마구 처형했다. 위구르인 사이에서 몰래 자체적으로 튀르크-이슬람 교육이 시행되는 마당에 이러한 정책은 기름에 라이터를 던지는 꼴이었다. 1931년 중국인 경찰서장이 위구르인 여성에게 집적거리다 분노한 위구르인들에게 살해당한 것을 계기로, 하미에서 또 한차례 봉기가 일어났다. 양쩡신이 위구르인 봉기군에게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쓰면서 제압한 것과 다르게 진수런은 이번에도 한족의 복수라며 항복한 위구르인 민간인마저 마구 학살했고, 이에 당황한 위구르인들은 회족 군벌 [[마중잉]]을 끌어들였다. 1931년 마중잉이 이끄는 회족 기병 수백여 명이 진수런의 군대를 하미에서 축출하면서 이에 위구르인들이 고무되면서 1932~33년 사이에 신장 전 지역이 봉기에 휩싸였다. [[마중잉]]은 하미를 해방시키고 진수런이 보낸 후속부대마저 대패시켰다. || [[파일:20570E29-D588-483A-B6C0-86D0083FB83F.jpg|width=100%]] || || 국민당 진수런 정권에 의해 강제 징집된 위구르인들 || 무능한 진수런은 같은 한족들에게도 버림받아 1933년 [[4.12 디화 정변]]으로 축출되었고 쿠데타 세력은 신강성 최대의 무력을 가지고 있던 육군군관학교장 성스차이를 변방독판으로 추대했다. 1933년 마중잉과 함께 싸우던 위구르인 지도자 니야즈 호자와 마흐무드 무히티는 소련의 사주를 받고 돌연 마중잉을 절교하고 성스차이 편으로 돌아섰으며, 그 대가로 소련과 성스차이의 지원을 받아 [[동튀르키스탄 제1공화국]]을 세우고 헌법을 제정, 독립을 선언한다. 위구르인들의 지지까지 얻은 성스차이는 쿠데타 세력을 모조리 숙청해버리고 신강의 지배자로 등극한다. 성스차이와 협력하던 동튀르키스탄 제1공화국은 이듬해 위구르인들에게 배신당했다 생각하며 폭주하던 [[마중잉]]의 공격을 받아 붕괴되었고, 살아남은 지도부는 1937년부로 스탈린의 사주를 받은 [[성스차이]]에게 숙청당했다. 신장에서 소련과 국민당 정권, 러시아 백군 난민과 회족과 위구르인이 서로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탄생한 [[동튀르키스탄 제1공화국]]은 민주주의를 강조했으며, 헌법에서 교육의 진흥과 외국 과학 기술의 도입에 관련된 내용을 집어넣었다. 허나 동튀르키스탄 제1공화국은 실질적으로는 소련과 성스차이 군벌의 통치를 받았으며, 민주주의와 교육 및 과학을 진흥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실행할 만한 돈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신생 공화국의 정책은 실질적으로 니야스 호자 정권의 생존에 맞춰졌다. 신장에 체류하던 스웨덴인 선교사들의 도움을 빌려 유인물을 인쇄하는 정도가 이들이 할 수 있는 근대화의 전부였다. 소련에서 보내준 고문들은 대게 NKVD 요원들이었다. 동튀르키스탄 제1공화국은 삽질만 한 것은 아니고 오늘날의 위구르족 민족 정체성 확립에 중요한 기여를 남긴다. 국민당과 진수런이 과거 이 지역에 있었던 토하라인들이나 사카인들이 한어의 방언을 썼다고 우긴 것과 다르게 러시아의 튀르크어 학자 세르게이 말로프와 동투르키스탄 정부는 신장의 여러 민족들을 비교분석한 후에 신장의 무슬림 농민들에게 위구르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어준 것. 성스차이는 소련 학자들이 고안한 "위구르 민족"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유포했으며, 동튀르키스탄 정부는 이름을 위구리스탄으로 변경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기도 했다. [[마중잉]]의 공격으로 동튀르키스탄 제1공화국이 붕괴되고, 성스차이의 소련인 고문들이 동튀르키스탄 민족주의자들을 의심하고 대거 숙청하면서 해당 계획은 파기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