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구르/역사 (문단 편집) === [[위구르 제국]] ===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1b15dc97cd3fa3daec4adb2fcaffd66f--warriors-silk-road.jpg]]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위구르 제국)] 위구르는 [[한자]]로 '''[[회골]]'''이나 [[회흘]], 회홀 등으로 쓰였는데, 중당시대에 꽤나 강성한 국가였다. 대표적인 것이 741년 동[[돌궐]]을 멸망시키고 세웠다가 848년 [[키르기스]]인의 침공으로 멸망한 [[위구르 제국]](위구르 칸국)이었다. 돌궐 제국때부터 항쟁해왔던 당나라와는, 위구르 제국의 서쪽에 있던 아바스 왕조와 연합한 뒤 751년 일어난 [[탈라스 전투]]의 승리로 인해 당나라의 서진이 저지되면서 위구르 제국의 안정이 확보되었고 이후 위구르는 이슬람 제국과 당나라의 사이에 있으면서 끊임없이 동쪽에 쳐들어오는 당나라를 막으면서 생존해왔다. [[안록산]]과 [[사사명]]이 일으킨 [[안사의 난]]이 일어나자, [[당나라]]를 지원해주었는데 단순히 반란군을 격퇴하는 것뿐 아니라 수복한 [[낙양]]을 약탈하고, 심지어 칸이 당나라를 방문했을 때 칸을 맞이해준 당나라 황족인 옹왕(후의 당나라 덕종)이 보는 앞에서 당나라 장수들 더러 춤을 춰보라고 협박하고, 장수들이 거부하자 칸이 직접 매질을 해 죽여버릴 정도로 당나라를 업신여기고 무시했다.[* 이 일을 직접 목격한 옹왕은 위구르를 극렬히 증오하여 나중에 황제가 됐을 때 그들과의 동맹 맺기를 거부하다가 신하의 간절한 조언으로 겨우 위구르와 동맹을 맺었다.] 위구르에 바치는 어마어마한 [[비단]] 등 조공량 때문에 당나라 사람들의 허리 펼 날이 없었다고 할 정도다. 위구르를 비롯한 유목민 국가들은 자신들의 말과 중국의 비단을 거래하는 이른바 '견마무역'을 통해 이득을 얻었는데 원래 말과 비단의 환율은 1대1이었으나 위구르는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이 환율을 1대40, 1대50 등으로 멋대로 올려버리면서 당나라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켰다. 위구르 제국은 [[관롱집단]]의 기원이 된 [[탁발선비]]처럼 중국 문화와의 동화를 선택하는 대신에 [[소그드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마니교를 국교화하였으며 초원에 거주하는 북방 유목민족의 역사에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