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다푸 (문단 편집) == 평가 == [[중국]] 현대 문학의 선구자 중 하나로서, [[현실주의]] 문학계에 루쉰이 있었다면 [[낭만주의]] 문학계엔 위다푸가 있었다. [[신해혁명]] 직후 중국 문학계는 기존의 고전 문학계의 한계[* 당시 중국어의 문어(文語)는 구어(口語)와 너무 달랐고 운율 형식과 전고(옛 글의 표현 인용) 사용에 대한 원칙이 너무 빡빡하게 적용되었으며, 또한 내용은 유교적 측면으로 치우쳤었다.]에서 벗어나 서양의 문학 이념과 문예 사조를 도입해 일반 대중의 공감과 이해를 자아낼 수 있는 현대적 문학으로 탈바꿈하고자 했다. 이에 [[신청년]] 등의 정식 문학 전파 경로뿐 아니라, 지식인들이 사적으로 창단한 문예사단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는데, 위다푸는 그 중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창조사의 창립자였다. 욱달부는 일본의 사소설[* 私小說, 자기 자신이나 주변인이 사사로이 겪은 일을 소설로 옮긴 것으로 20세기 초 일본에서 유행하였다.]의 영향을 받아 자아, 주관, 감정을 중시하였고, 청년들이 공감할 내용을 소설로 옮겨 내었다. 그의 대표작 <침륜>은 일본에 유학 온 중국 유학생이 한번쯤 겪었을 법한 경제적, 정신적 수난과 성(性)적 고민, 애정 문제, 애국주의 문제를 다루었고, <은회색 죽음> 등도 봉건 질서 속에서 청년들이 자신의 성에 대해 갖기 쉬운 고민들을 다룬 소설이다. 이처럼 성(性)이 언급되는 내용을 다룬 탓에 퇴폐작가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지만, 위다푸가 섬세한 인물 묘사와 다양한 서정적 내용을 통하여 독자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던 명작가였음은 부정되지 않았다. 다만, 귀국 후 욱달부는 현실주의로 전향하여 루쉰의 지지를 받으며 활동했고, 죽을 때까지 다시 낭만주의로 돌아가지 않았다. [[분류:청말의 인물]][[분류:중화민국의 인물]][[분류:중화권 소설가]][[분류:1896년 출생]] [[분류:1945년 사망]][[분류:항저우시 출신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