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백옥 (문단 편집) == 생애 == 위백옥은 힘이 장사였던 인물로 무예를 숙련하였다. 위백옥은 천보 연간에 여러 차례 변방을 지켜서 원외제위장군(員外諸衛將軍)까지 승진하였다. [[안록산의 난]]으로 당나라가 혼란에 빠진 가운데 [[숙종(당)|숙종]]이 즉위하자, 위백옥은 안서에서 장안으로 돌아와 신책군(神策軍) 병마사(兵馬使)가 되었다. 안록산의 난이 진압되고 759년에 다시 [[사사명의 난]]이 일어나 사사명의 부하인 이귀인(李歸仁)이 침공을 시작하자, 위백옥은 수백 명의 기병을 이끌고 강자판(疆子阪)에서 이귀인을 격파하였고, 이때 세운 공적으로 우우림군대장군(右羽林軍大將軍)으로 승진하였으며, 위백옥은 사진북정행영절도사(四鎭北庭行營節度使)로 옮겼다. 위백옥이 사로잡은 포로 수백 명을 데리고 예궐하자, 숙종은 포로들을 사면하고 위백옥을 신책군 절도사로 승진시켰다. 761년, [[사사명]]이 수도인 장안을 도모하기 위해 침공하고, 사사명의 아들인 [[사조의]]가 밤에 군대를 이끌고 합주(陜州)를 습격하자, 위백옥은 군대를 이끌고 영령(永寧)에서 이들을 역습하여 물리쳤다. 이때 세운 전공으로 위백옥은 특진(特進)으로 진위되고 하동군공(河東郡公)으로 책봉되었다. 763년, [[토번 제국]]이 당나라를 침공하여, [[대종(당)|당대종]]이 합주로 피신하였다. 대종은 위백옥이 재간이 있고 중대한 임무를 맡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여 그를 강릉윤(江陵尹) 겸 어사대부로 삼고 형남(荊南) 절도관찰등사로 임명하였다. 곧이어 위백옥은 검교공부상서가 더해지고 성양군왕(城陽郡王)으로 책봉되었다. 이후 대력 연간[* 766년 ~ 779년]에 위백옥은 모친상을 당하였는데, 조정에서 왕앙(王昂)을 파견해 위백옥의 직무를 대신하도록 하자, 위백옥은 슬며시 관리를 시켜서 조서를 받지 않고 형남 절도등사를 맡아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이후 위백옥은 776년에 입궐하고 바로 그 해에 수도인 장안에서 병으로 죽었다. [[분류:수당시대/인물]][[분류:776년 사망]]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