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서(역사책) (문단 편집) === 특징 === 특징으로는 다음과 같다. * 본기 서두 서기라는 형식으로 북위 왕조 창건 이전의 [[탁발선비]]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 북제 때 편찬되었기 때문에 북제의 전신인 [[동위]]정권과 후계 국가인 [[북제]]를 정통인 후계자로 하고 있다. * 열전에 5호의 여러 나라와 남조의 계승을 내세우고 있다. * [[불교]]·[[도교]] 관련의 사건을 기록한 〈석로지〉가 있다. 북위 건국 이전부터 시작하여 북위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동위를 정통이라 했으나, 북제를 왜곡하고 열전(列傳)의 서술이 불공평하다. 특히 남조의 나라들에 대해서 극히 불평등하게 기록하는 등 공정성이 심히 낮다. 예를 들어 남조 [[송(육조)|유송]]의 무제(武帝) [[유유(송무제)|유유]], [[제(육조)|남제]]의 고제(高帝) [[소도성]]을 '도이'(島夷, [[섬]] [[오랑캐]])[* 이것을 전후사정도 모르는 [[환빠]]들이 유유=소도성=한반도인 또는 유송=남제=한반도 역사라고 날조하는 명목이 되기도 했다.]라고 기록하고[* 이에 맞서 남조에서는 북조를 '위로(魏虜, 위나라 오랑캐)'라고 기록했다.] 거기다 [[동진]] 원제 [[원제(동진)|사마예]]가 사실은 [[사마근]]의 아들이 아니라 그의 부장 [[우금(서진)|우금]]의 아들이라고 기록하는 등 괜히 '''더러운 역사서'''(穢史, 예서)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물론 자국을 높여주고 타국을 낮추는 경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사서에서 보이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타국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기를 쓰고 깎아내리는 경향은 찾아보기 힘들다.] 또 [[북위]]가 [[서위]]와 동위로 분열된 계기인 [[효무제(북위)|효무제]](孝武帝)의 [[도주#s-1|도주]][* [[효무제(북위)|효무제]]는 원래 실권자 [[고환]](...)이 [[꼭두각시]]로 황제로 세웠는데 효무제가 고환을 죽일려다가 발각되자 효무제가 [[말(동물)|말]]을 타고 수도 [[업]]성을 떠나 [[시안(도시)|장안]]으로 도주했다. 효무제는 장안에 도착한 후 관중대도독 [[우문태]]에게 의지해 실권을 넘겼는데 고환은 효무제에게 돌아오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고환은 따로 효무제의 일족 효정제를 세우면서 북위는 우문태가 실권을 잡은 서위와 고환이 실권을 잡은 동위로 분열되었다. 이후 서위는 북주, 동위는 북제로 왕조가 바뀐다.] 때문에 그를 '도망친 황제'라고 조롱하는 의미로 '출제'(出帝)라고 기록했다. 그에 반해 당나라 시기에 만들어진 《[[북사]]》와 《[[북제서]]》에서는 '효무제'라고 제대로 기록했다. 《위서》는 당대에도 논란이 되어 신명나게 까였고[* 북제가 멸망한 이후 《위서》를 편찬했던 위수가 사후 《위서》 때문에 '굴묘편시'를 당한 기록이 실제로 존재한다. 게다가 북주 이후 수나라와 당나라는 서위와 북주로부터 정통성을 계승한 국가였기 때문에 《위서》는 당대의 지식인들의 눈에 들 리가 없었다.] 북위 - 서위 - 북주 -[[수나라|수]] - [[당나라|당]]을 정통으로 하는 위담의 《위서》(92권)이나 [[당나라]] 장태소의 《후위서》(100권) 등의 개정판이 만들어졌지만 모조리 소실되었다. 더구나 《위서》 자체도 난리통에 부분부분 소실되어서 《위서》를 포함해서 편집되었던 《[[북사]]》에서 역으로 내용을 가져와야 했다. 현재 전하는 《위서》는 잃어버린 부분을 [[북송]] 시대에 보완한 것이다.[* 북송 때 30권 정도 소실본이 발견되어 《북사》를 인용해 보충했다는 기록이 있고, 군데군데 보충 부분이 명기되어 있다.] 문제는 존속 기간의 문제도 있어서 《위서》가 남북조 가운데 북조를 다룬 《북사》의 저본이라는 것이다. 덕분에 《남사》와 《북사》가 서로 내용이 다르면 대부분 《남사》를 기준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 단적으로 백제의 [[요서경략설]]을 《남사》 계통에서는 긍정하는 기술을 하고, 정작 《북사》 계통에서는 기록하지 않는데, [[남송]] 때 통사를 기록한 [[사마광]]의 《[[자치통감]]》은 《남사》의 기준을 따르고 있다. 이 항목과 상관은 없지만 제목은 같은 《위서》가 또 있다. 바로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위(삼국시대)|조위]]의 역사서인 《위서》로 [[왕침]]이 썼다. 현존하지는 않고 [[진수(역사가)|진수]]의 《[[정사 삼국지]]》와 [[배송지]]의 주석에 인용되었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위서》가 이것이라는 주장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