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서 (문단 편집) === 위서 논란이 있는 문서 === * [[격암유록]]: [[남사고]]의 이름을 빌어 [[천부교|신흥종교]] 세력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만든 위서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 [[규원사화]]: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공식적으로 1972년에 고서심의위원 이가원, 손보기, 임창순의 3인이 심의하여 조선 왕조 숙종 1년인 1675년에 작성된 진본이라고 판정하였고 현재까지도 뒤집어진 바가 없어 진본으로 등록되어 있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는 2003년 3월에 서지 전문가들이 재감정을 실시한 바 있는데 이때 대체적으로 진본이 아니며 일제 때 필사되어 제본된 것으로 판단한 바 있다. 북한이나 일부 한국 사학계에서는 사료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한국 사학계는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 [[도덕경]]: 과거에는 '[[노자]]라는 인물 자체가 [[허무인|가공의 인물]]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으나 기원전 3세기 무렵의 판본이 발견되어 위서설은 많이 위축되었다. 위서일 가능성은 낮지만 내용적으로 본다면 본래 책의 내용 중 일부만이 기록되었으며 그 내용마저도 알려진 판본과 차이가 많아 후대의 조작이 심하게 들어갔음은 부정할 수 없다. * [[다나카 상주문]]: [[야마가타 아리토모|회의 참석자]]가 [[태사자|시기상 이미 죽어 있다든지]] 등등의 문제로 중국이 위조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지만 [[대동아공영권|더 웃긴 건 이후 일본 제국 내에서 이뤄진 '만주-함경 철도 건설을 포함한 여러 정책들'이라든지 당시 일본 수뇌부의 중국에 대한 인식 등등 일본 제국의 계획이 만주와 내몽골에 한해서 꼼꼼하면서도 고스란히, 나머지 지역에 있어서도 간략하게나마 적혀 있고 일본 제국의 팽창이 정말로 그 상주문대로 이뤄졌으며]] 당대의 일본인에 의해서도 '내용은 분명 일본인이 적은 것이다'라며 진본으로 판명되어 중일 사이의 희대의 괴문서로 남아있다. * [[대승불교]] 경전 전체: 여기서 위서라는 것은 문헌학상의 '위서'와 개념이 다르다. 문헌학상의 위서 정의를 댄다면 대승경전 거의 대부분은 [[석가모니]]의 친설이 아니라고 의견이 모이므로 위서다. 다만 이것이 '종교의 경전으로서' 가치가 있느냐,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연결되느냐 하는 문제인데 자세한 내용은 [[대승비불설]] 문서로. * [[동방견문록]] * [[이수성자술]]: [[태평천국]]의 충왕 [[이수성]]이 체포된 뒤 죽기 전 작성한 자술서다. 일단 이수성이 체포된 뒤 죽기 전 자술서를 작성한 뒤 [[증국번]]의 명령으로 처형된 것까지는 역사적인 사실인데 현재 전해지는 자술서가 이수성이 작성한 원본 그대로인지 논란이 되고 있다. 증국번이 세상에 알려지면 본인과 집안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일부 부분만 수정했다는 설이 있으며 아예 증국번이 원본은 없애 버리고 본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자술서 전체를 위조했다는 위서설까지 있다. 다만 이수성자술이 태평천국 내부 사정을 꽤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증국번이 자술서 전체를 위조했다고 하더라도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게 아니라 실제 작성된 이수성의 자술서를 뼈대로 하여 본인에게 유리한 형태로 재창작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 [[편의십육책]]: 제갈량이 저술한 책이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진수]]가 편찬한 [[제갈량집]]에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위서 논란이 있다. 해당 문서로. * [[화랑세기]] 필사본: 화랑세기 자체는 분명히 당대에 쓰였던 사서로 [[삼국사기]]에도 언급된다. 문제는 현대에 발견된 필사본. * [[출사표|후출사표]]: [[제갈량]]집에는 없는 이야기이므로 논란이 있다. 게다가 내용 상 제갈량이 아닌 [[제갈각]]이 했을 법한 이야기가 나온다. * 성서의 [[모세오경]]과 [[복음서]], [[히브리서]]: 책 자체에는 책이 지어진 때, 지은이 등의 서지사항이 없어서 위서라고 하기 애매하다. 그러나 책과 별도로 전승되는 지어진 때와 지은이가 실제와는 다를 것이라는 논쟁이 있어서 만약 책 자체에 전승되는 서지사항이 붙어 있었다면 말 그대로 위서 논쟁에 해당한다. * 성서의 일부 바울로 서간과 저자가 바울로가 아닌 사람으로 명시된 서신서: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의 제자들 대부분은 천하고 무지한 자들이라고 했는데, 사실 유대를 비롯한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는 전체 인구의 무려 90%가 [[문맹]]이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의무교육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비싼 수업료를 내지 않으면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문맹률이 굉장히 높았다. 심지어 로마의 관리들조차 글씨를 제대로 쓸 줄 몰라서 글씨를 쓸 줄 아는 지식인들한테 돈을 주고 자기들 대신 글씨를 쓰게 하는 일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성서학자들은 사도 바울로가 썼다는 몇몇 문헌들을 제외한 나머지 신약성경에 포함된 문헌들 대부분은 사도들의 이름을 빌려서 후세에[* 사실 12사도 대부분(사도 바울로를 제외한)은 그들 스스로 문헌 기록을 쓰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12사도들은 그들 살아생전에 세상의 종말이 올 테니 문자 기록을 남기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이유에서였고 다른 하나는 이미 설명한 대로 당시 문맹 인구가 굉장히 높은 데다가 사도들 대부분도 문맹이어서 기록을 남길 줄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12사도들이 죽고, 그들을 따르는 신도들도 늙어서 하나둘씩 죽어가자 교회를 계속 존속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그리스어 같은 고급 학문을 배운 지식인들이 비로소 문헌 기록을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누군가가 쓴 위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 [[기독교]]의 [[위경]] * [[이위공문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