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선공 (문단 편집) ==== 정나라와의 계속된 전쟁 ==== 위 선공 6년(기원전 713년), 가을 위나라와 [[채나라]], 성나라는 [[주나라]] 천자의 동의없이 송나라를 쳤다. 7월 5일 정나라 군대는 노나라의 교외에 머물렀다. 위군, 송군은 정나라를 쳤고 채나라 군대는 대나라의 후방을 노렸다. 8얼 8일 정나라는 대나라를 포위했다. 8월 9일 위나라, 송나라, 채나라 3군이 합치지 못해 정나라가 대나라를 이겼고 3국의 군대를 포로로 잡았다. 위 선공 10년(기원전 709년), 위 선공이 제 희공과 포 땅에 회맹했다. 위 선공 12년(기원전 707년), [[주환왕]]이 정 장공에게 경사직을 박탈해 다시는 주 왕실에 입조하지 않았다. 주 환왕은 정 장공의 주 왕실을 무시하는 행보에 진노하여, 위나라, 채나라, 진(陳)나라 3개국의 병사를 거느리고 정나라를 쳤다. 정 장공이 친히 그것을 막으러 갔다. 주환왕이 중군을 거느리고 괵공 림보에게 우군을 거느리게 하고, 채군과 위군이 돕게 했다. 그리고 좌군은 주공 흑견이 거느리게 하고 진(陳)군이 돕게 했다. 반대로 정나라 공자 자원의 건의를 받아들여, 만백에게 우군을, 채중에게 좌군, [[고거미]]에게 중군에서 정장공을 호위하게 했다. 그 교전에서 정나라가 이겼을 뿐만 아니라 축담은 주 환왕의 어깨에 화살을 명중시켰다.[* 그 일로 축담은 정 장공에게 해고되었고, 그 충격으로 화병에 걸려 사망했다.] 위 선공 14년(기원전 705년), 위나라는 정나라와 함께 제나라를 쳐 맹읍과 상읍을 쳤다. 주 환왕은 맹읍, 상읍의 백성을 겹 땅에 옮기게 했다. 위 선공 17년(기원전 702년), 위, 제, 정 3국과 노나라의 낭 땅에서 교전을 벌였다. 위 선공 18년(기원전 701년), 위, 제, 정, 송 4개 나라가 회맹했다. 위 선공 19년(기원전 700년), 11월 병술일 위 선공이 죽었다. 시호는 선(宣)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시법]] 문서 참조.] 위 선공이 죽고 세자 삭이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위 혜공이다.[* 그러나 그 내용이 석연치 않은데, 그것은 후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