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악자 (문단 편집) === 현실 === * '''긍정적인 유형의 [[군기반장]]들''' - 조직의 질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악마가 되는 사람들이다. 긍정적인 유형의 군기반장이더라도 하급자 입장에서는 공포 그 자체인 악마일 뿐이지만, 그 덕에 조직의 성과는 더욱 좋아진다. 대표적인 사람들로는 [[고든 램지]], [[에드워드 권]], [[최현석(1972)|최현석]] 등 대부분의 요리사들, [[이순신]], [[서황]], [[제갈량]] 같은 명장들과 엄정한 정치가들, [[이순재]], [[김연우]], [[김종국]], [[유이(배우)|유이]], [[조권]], [[승호]] 등 연예계에서 엄격하기로 유명한 인물들,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엄격하지만, 속은 따뜻한 아버지(어머니) 등이 해당된다. * [[강조(고려)]] - 김치양을 털어버리고 목종까지 내친 탓에 반역자라고 평가받았으나, 그의 최후와 그 이후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그는 애국자였다. * [[프란치스코(교황)|프란치스코]] [[교황]] - '''교황 즉위 이전 [[신부(종교)|사제]] 신분 한정.''' 1976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국이던 [[아르헨티나]]에서는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라는 잔혹한 군사 독재자가 나타나서 수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을 학살하곤 했는데[* 체포된 민주화 운동가들은 재판도 없이 납치, 고문한 후 [[비행기]]에 태워 [[대서양]]과 [[태평양]] 한복판에 내던졌고, 여성들은 겁탈해서 임신시킨 뒤 그렇게 낳은 아이들을 정부 인사들에게 보내 정부의 친위대로 만드는 극악무도한 악행들을 벌였다. 이런 방식으로 '''최소''' 1만 5천명 정도의 무고한 인명들이 희생당했다.], 당시 프란치스코[* 이 시기에는 세속명인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시보리라고 불렸다.]는 겉으로는 비델라 정권에 협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으나[* 그래서 [[프란치스코(교황)|프란치스코]]의 실제 행적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그가 비델라에게 충성을 다한 악인으로 오해한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본인도 이 사실을 내내 함구하고 있던지라, 그가 [[교황]]으로 즉위한 뒤에야 숨겨져있던 선행이 알려진 것이다.], 뒤로는 자신이 재직하던 [[성당]]으로 도망친 민주화운동가들을 숨겨주고 외국으로 망명하는 길을 알선해주거나, 아르헨티나 인구 수의 절대 다수가 가톨릭 신자라는 점을 이용해 군사정권의 관계자들을 만나서 체포된 정치범들을 석방해줄 것을 호소하기도 하여,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물론 그의 이런 행적에 대해 군사정권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못하고 너무 소극적으로 대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똑같이 인구 수의 대부분이 [[가톨릭]]을 믿던 [[엘살바도르]]에서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가 군사독재정권에게 정면으로 대들다가 끽소리도 못하고 살해당한 것을 생각하면, 이래 봬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을 구했다는 반론이 더 우세한지라[*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비델라는 '''그 [[폴 포트]]도 능가할 정도로''' 잔혹한 독재자였기 때문에 [[신부(종교)|사제]] 시절의 [[프란치스코(교황)|프란치스코]]가 비델라에게 정면으로 도전했다면 목숨을 부지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의 [[신부(종교)|사제]] 시절 행적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칭송하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 [[김가진]] - [[경술국치]] 때 일본에게서 조선귀족 [[남작]] 작위를 받았지만, 사실은 이전에 [[을사조약]] 체결에도 반대해 왔고 후에는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영친왕]]을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보내 보호하고자 했다. * '''[[김용환(1887)|김용환]]''' - 무려 '''[[도박]]'''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한 비범한 사람이었으며, 심지어 도박에 매우 능하여 막대한 판돈을 따내고, 만약 도박에 지더라도 자기 수하들을 불러 판돈을 강제로 쓸어가는 [[쟈이아니즘]]을 선보이며 그 돈들을 전부 독립투쟁에 바쳤다. * 노포별 - 춘추시대의 인물로 형인 노포계의 당부를 받고 임금을 시해한 간신인 최저, 경봉의 신임을 얻었다가 그들을 차례로 몰아냈다. * [[리슐리외]] - 정치인으로서의 관점에서의 한정. 비록 본인은 [[가톨릭]]의 [[추기경]]이였지만 [[30년 전쟁]] 당시에 온 [[유럽]]이 [[가톨릭]] 동맹과 [[개신교]] 동맹의 두 편으로 나뉘어 싸울 때, 자국의 전통적인 적인 [[스페인]]과 [[신성 로마 제국]]을 견제하고자 개신교 편에 가담하자는 대담한 결정을 내렸다. 게다가 밤낮없이 정무에만 집중하는 [[애국자]]였다. 능력 또한 출중하여 그가 재상으로 있던 [[루이 13세]] 때 민생은 안정되고, 귀족들에 대한 적극적인 견제로 왕권은 최고의 경지에 이르는 등, [[프랑스]]는 최고 전성기를 맞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그는 프랑스 역사상 최고의 정치가들 중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리슐리외]]의 이런 면모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에서도 잘 묘사되어 있다. 흔히 삼총사에서 리슐리외는 악당에 가깝게 묘사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정작 소설 내에서도 리슐리외는 [[영국]]과의 전쟁 중에 [[프랑스군]] 총사령관으로서의 업무를 보러가기 위해 경호원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정적이나 다를 바 없는 [[달타냥]] 일행들에게 경호를 맡기는 등, 위악자적인 면모가 확실하게 드러난다. 마지막 부분에서도 리슐리외가 몇년 새 폭삭 늙어버린데 대하여 '아마도 나라를 위해 너무 일하다 보니 급격히 늙은 거 같다'라는 부분이 있다.] * [[박명수]] - 그의 대표적인 방송 내 캐릭터인 악마의 아들, 버럭, 호통, 막말, 욕설, 독설은 방송용 설정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 성격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평소엔 굉장히 좋은 아버지이자 남편이며[* 실제로 박명수의 아내 한수민씨는 다시 태어나도 박명수와 결혼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기부도 상당히 많이 하고 선행을 많이 보여주기에[* 치킨집을 하던 시절 알바생이 집안 사정으로 알바로 마련한 등록금을 집으로 보내야 할 상황이 오자 배움에는 때가 있는 법이라며 그 알바생의 집에 보내라고 돈을 줬다. 이후 그 알바생은 성공 후 돈을 갚았다. 또한 자기 집의 가사도우미에게 빵을 구워 대접도 하고 가사도우미 남편이 중한 병에 걸리자 치료비를 주기도 했다. 그리고 사랑의 달팽이관 단체에 기부해 그의 기부금으로 인공 와우 수술을 받은 아이도 있다.] 달리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위악자라고 볼 수도 있다. * [[알베르트 괴링]] - 형인 [[헤르만 괴링]]과는 달리 포로가 필요하다면서 뒤에서 풀어주는 등, 나치스의 인맥을 통해 많은 생명을 구했다.[* 사실 알베르트 괴링의 경우는 딱히 나쁜 척도 하지 않았으니 위악자라기보단 선인에 가깝다. 나치스라서 그런 것일 뿐.] * '''[[오스카 쉰들러]]''' - 해당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겉으론 방탕하게 생활하면서 나치스들과 교류하는 척 했지만 뒤로는 수많은 유태인들의 목숨을 구했다. * '''[[진린]]''' - 겉보기에는 안하무인한 태도로 [[이순신]]의 전공을 빼앗는 듯한 행보를 보였지만, 선조가 이순신의 전공과 명성을 시기하여 더 큰 고초를 가할 위험이 있음을 파악하여 이순신이 전공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을 묵인했고, 사적으로는 자신보다 2살 젊은 이순신을 오히려 높여 부르며 존경을 표했다. 또한 명나라에는 이순신의 진짜 전공을 상세히 보고하며 칭찬했다. 다만 실제로 안하무인한 면모가 없지는 않아서 이순신을 만나기 전에는 조선 관리들에게 하도 횡포를 부려서 당시 정승이었던 류성룡까지 나서서 말렸는데도 말을 안 들었고 이랬기에 진린이 이순신과 함께 싸우게 되자 류성룡과 조정 대신들은 이순신이 얼마나 강직한데 진린의 횡포를 방관할 리도 없으니 명나라랑 제대로 협조가 안 되어 이기기 힘들 것이라고 보았다. * [[첩보원]] - 적의 신뢰를 받으려면 어느 정도 적을 위해 일해야 하는데 이게 아군 입장에서는 당연히 악이다.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파울리네 슈트라우스[* Pauline Strauss, 1863~1950,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아내] - '''부부가 쌍으로 모두 위악자인''' 특이한 케이스다. 남편은 말년에 '제국 음악국'의 총재에 오르고 선전용 음악도 몇 개 만들어 나치에 협력했다는 논란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유대인 대본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본으로 오페라를 작곡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며느리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며느리와 손주들을 보호하려면 어쩔 수 없이 협력하는 것처럼 보여야했다는 동정론이 많다. 그리고 아내는 겉으로는 남편과 부부싸움도 자주 하고 남편이 쓴 곡이 마음에 안 들면 남편이 쓴 악보에 멋대로 비판하는 글을 쓴 적도 있지만, 남편이 젊었을 적에 돈 낭비가 심했을 적에 틈만 나면 빨리 작곡하라고 소리쳤고 이에 남편은 그 말만 들으면 좋아하던 카드 게임도 멈추고 바로 작곡에 열중했다고 한다. 즉 겉으로는 악처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명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만든 조력자 중 한 명이었던 것.[* 그리고 파울리네는 1살 연하였던 남편이 1949년에 죽자 그 충격으로 매일매일 울며 지내다가 1년 뒤인 1950년에 남편 곁을 따라갔다.] * '''[[척 피니]]''' - 겉으로는 [[구두쇠]] 갑부로만 보였지만 그 정체는 남몰래 전 재산의 '''99%'''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던 기부왕이었다. * [[측천무후]] - 남편인 [[고종(당)|고종]]을 [[바지사장]] 신세로 만든 것도 모자라서, 아들 [[중종(당)|중종]]과 [[예종(당)|예종]]은 아예 폐위시키고는 황제의 자리를 찬탈해버리는 전무후무한 일을 벌였다.[* 다만 당 중종은 폐위당해도 싼 인간이었다(...)] 하지만 [[측천무후]]는 이렇게 얻은 절대권력을 [[관롱집단]]으로 불리는 [[귀족]] 세력을 일소하고,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푸는 데 사용해서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군들 중의 한 사람으로 거듭났다. 숙청을 통해 절대권력을 손에 넣은 군주라는 점은 [[연산군]]과 비슷하지만 이후의 행적으로 평가가 정반대로 갈리게 된 케이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중국 역사상 여성 권력자로서는 드물게도 [[신룡정변]]으로 황제에서 물러나지만 어디까지나 [[양위]]이지 [[폐위]]가 아니었고 심지어 정변측이 먼저 조용히 물러나고 태상황제가 되어주시면 더이상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한 것이었다. 물론 이 당시 측천무후는 병이 깊었고 실제로도 양위 10개월만에 사망하긴 했어도 그래도 중국 역사상에 탈법적인 방식으로 집권하고 '''81세'''까지 장수하면서까지 이렇게 뒷끝이 좋은 인물은 없다고 할 수 있다. * [[티베리우스]] - 해당 문서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